나는 스스로를 지켜야했다. 벌어진 채로 아물어버린 모난 상처를 단단한 유리로 덮었다. 엄마는 이제 내 마음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구에게도 진짜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과거의 기억이 반복해서 떠올랐고 늘 우울했다. 나는 지나간 시간에 갇혔다. p.38
제 깊은 아픔은 고등학생 시절 때부터 시작되었어요. 이유모를 괴롭힘에 시달리는게 너무 힘들어 담임 선생님, 친구들, 오빠, 엄마 아빠 모두에게 SOS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니가 이상한 거야'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미칠듯이 괴로운 현실이 견디기 힘들어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수백번 수천번을 망설였던 말, 전하기 힘들었던 저의 속마음을 그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꺼내어놓았어요. '엄마,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엄마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
늘 농사일로 바빴기에, 평범한 대화조차도 제대로 나눈 적이 없었기에, 이런 저의 이야기가 당황스러웠던 걸까요? 아니면 멀게만 느껴진 이 관계가 저 혼자만 아팠던 걸까요? 그날 저녁, 아무런 대답도 이야기도 듣지 못했고 '벽에 대고 이야기한다는 게 이런 느낌인걸까' 라는 슬픔만 마음속에 가득하게 됐어요.
그 이후에도 늘 결정적인 순간, 하필 사랑이 관심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한 마디가 필요했던 순간마다 역설적이게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구나'라는 걸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쌓이고 쌓인 마음이 괴로워 울면서 이야기를 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 뿐. 더 멀게만 느껴지는 마음이 너무 아파 입을 꾹- 닿게 됐어요.
이런 제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진 날도 있었어요.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서운해하고 상처를 받는거야? 니가 진짜로 이상한 거 아니야?' 자책 끝에는 결국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됐어요. 또, 내가 원하는 그 사랑은 결국 채워지지 않을 거라는 것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해달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도요.
엄마에게 사랑받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구나
애써 모른 척 하고 싶었는데... 결국 알아채고야 말았어요.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마, 더 아파, 자존심 상해,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마, 그러면 상처받을 일 없어. 그렇게 점점 더 나를 고립시켰다. p.196
연애를 해도, 친구를 만나도, 직장생활을 해도 모든 관계가 불편했어요. 어렵고 두렵고 무섭고 긴장됐어요. 가까워지는 법을 몰랐고 솔직히 말하자면 가까워지려 하는 것도 싫었어요.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어요. 이유없이 잘해주는 사람에게 난생처음 따스함을 느꼈을 때, 조금씩 마음을 열어버리려는 스스로를 보며 더욱 더 굳건하게 마음을 닫았어요. '안 돼. 어차피 똑같을거야. 사랑받지 못할거야.'
벽이 허물어지려 할 때 쯤이면 다시 경계심을 높였고, 가까워지려 하면 가까워질만한 순간들을 피했어요. 단 둘이 있는 순간은 안절부절, 불안했고 눈을 마주치는 게 힘든 적도 참 많았어요. 그냥… 힘들었어요. 마음이 움직이려하면 더더욱 달아나려 애썼고, 가까이 다가오려 하면 할수록 더 높이, 두껍게 마음의 문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다가오지 않기를... 가까워지지 않기를 바랐어요.
마음이 움직이려 할때면 너무나 괴로웠어요. 좋은데, 좋은데, 좋은데... 안돼. 아플거야. 똑같을거야. 밀어내야만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너무 아플 게 뻔하니까. 그래서 피해다녔어요. 아무리 다가오려고 해도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어요. 잘못된 편견 때문에 저에게는 '관계'라는 것이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어려운, 내가 피해야 살아남는 그런 부정적인 것으로 자리잡아 버리게 됐어요.
다가오지 마.
나도, 다가가지 않을테니까.
사랑을 주는 상대가 지치기만을 바라며 끝끝내 거부하고 도망쳤어요. 사실 그렇지 않은데…
나는 특이하게도 문제가 생기면 감정을 모두 삭제해버린다. 아니, 감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중략) 아마도 어린아이가 본능적으로 택한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일 테다. p.29
Z클럽 번개모임을 갔던 날, '메세나님은 잘 안 울어요?' 라는 질문을 로미님께 건네받았어요. 이런저런 핑계아닌 핑계를 둘러댔지만 여전히 그 질문은 마음속에 남았고 '나는 왜 우는 걸 싫어하게 됐을까?'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몇 날 며칠을 고민했지만 여전히 찾지 못했던 답을 이 책을 읽으며 찾게 됐어요. 지나간 시간에 갇혀 있던 저를 마주하게 된 거에요.
평생을 묻어두고 모른 척 하고 싶었던 아픔들. 괜찮아졌다고 착각했던 순간들. 다 나았을거라고 믿었던 상처들. 그 속에서 여전히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저를 보게 됐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거기서 그러고 있는거야?' 이야기를 건네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아... 나는 아직도 아프구나. 여전히 아물지 않았구나... 여전히...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했구나.' 벗어나고 싶었던 모든 것들,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의 많은 것들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어요.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순간들, '그때 왜 그랬을까?'에 대한 실마리를 조금씩 조금씩 찾을 수 있게 됐어요.
이유미 이하연 작가님의 이야기와, 닫혀 있던 나의 마음과, 늘 바라만 보았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한-참을 바라보며 울었어요.
눈물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약 같은 거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고, 가까워지는 것도 멀어지는 것도 어려워 어느 곳에서도 편히 있지 못했던 지난 날... 이제 이만하면 되었다. 그대로도 충분하다.얼룩진 상처로 갇혀있던 나를 조금씩 조금씩 꺼내어주려 노력하고 있어요.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하연 작가님의 마음처럼 '이제 내가 안아줄게'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애쓰고 있어요. 어쩌면 엄마도... 지나간 어느 시간에 갇혀 더 많이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힘든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주신 이유미, 이하연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정말 오랜 시간 담아두었던 상처들을 마주하고 치유할 수 있게 되었어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어 감사해요. 사랑스러운 두 분 가정에 늘 사랑이 가득하기를, 행복이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