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173
끝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바람이 마지막 잎새를 떨구듯, 빛은 서서히 어둠에 스며들고, 생명의 노래는 저문 황혼 속에서 고요히 사라진다. 죽음은 그렇게, 한 걸음씩 곁에 다가와 모든 것을 멈춘다. 하지만 정적 속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이 곧 시작이라는 것을.
삶은 늘 순환한다. 대지에 스며든 빗물이 강이 되어 흐르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이루는 것처럼. 떨어진 잎은 흙이 되고, 흙은 새 생명의 밑거름이 된다. 죽음은 생명의 끝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가는 문이다. 문은 닫히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길을 연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쩌면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경외해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완성이다. 삶의 이야기가 정점에 이르고,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이다. 바닷물은 밀려갔다 다시 돌아오고, 사계절은 무한히 돌고 돌아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 죽음은 겨울의 정적 속에서 다음 봄을 준비하는 대지와도 같다.
끝과 시작의 경계는 실로 희미하다. 어느 순간 삶은 죽음으로 스며들고, 죽음은 삶으로 이어진다. 어둠은 빛이 될 준비를 하고, 고요는 소리를 기다린다. 이 끝없는 고리는 삶을 완전하게 만든다. 우리는 고리 속에서 비로소 영원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은 우리가 지나가는 문턱이고, 그 너머에는 또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안의 고통과 기쁨, 절망과 희망, 모든 것이 순환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존재하고, 시작이 있기에 끝은 두렵지 않다. 우리는 고리 속에서 끊임없이 춤춘다.
죽음과 삶은 서로를 품고 있다. 서로를 완성시키며,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사라진다. 별이 사라질 때, 빛이 수억 광년을 여행하며 새로운 별을 잉태하듯. 끝없는 순환 속에서 죽음과 삶, 둘의 노래를 듣는다. 그리고 노래는 끝나지 않는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