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있었다.
바람은 언젠가 깊은 산속에서 태어났고,
숲의 나뭇잎을 흔들고,
강물 위를 스치고,
메마른 땅에 이슬을 남겼다.
하지만 바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불었고, 지나갔고,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바람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느 날, 바람은 오래된 절집 처마 밑에서
스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삶은 바람과 같아서, 끊임없이 흐른다."
"우리는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으며, 다시 태어나네."
"업(業)이 우리를 이끌고, 윤회(輪廻)의 길 위에서 떠도네."
바람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불뿐이다. 나는 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자 스님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는 지금도 네가 누구인지 찾고 있지 않은가?"
"이전의 너는 강을 품었고, 숲을 지나쳤으며, 불꽃을 키우기도 했다."
"모든 것이 네가 만든 길이며, 네가 쌓아 온 업이네."
바람은 깨달았다.
자신이 움직임이 아니라,
모든 지나온 것들의 흔적이며,
흔적이 다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그날 이후, 바람은 달라졌다.
더는 목적 없이 떠도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씨앗을 날리고, 땅을 적시고, 나무를 흔들며
자신의 자취를 새겼다.
그리고 언젠가,
모든 흔적을 지우듯 조용히 멈출 것이다.
하지만 바람은 이제 안다.
그의 끝이 곧 시작이 될 것을.
그리고 다시 흐를 것을.
마파람이 흐르는 곳마다 얘기 하나가 새겨지듯,
삶도 그러하리라.
이 생을 지나 또 다른 생으로,
깨달음이 바람처럼 머무르기를.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