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29
침묵 속에서 반짝이는 미세한 입자들이
세상의 규칙을 말없이 가르쳐 줄 때,
젊은 과학자의 눈은 빛을 쫓았다.
원자의 궤도처럼 정교하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실험실을 벗어나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갔다.
공식이 아닌 통합을, 이론이 아닌 실천을,
독일을 넘어 유럽 전체의 안정을 위해
’위대한 실험’을 시도한 사람,
앙겔라 메르켈.
서독과 동독이 분리되었던 시절,
메르켈은 동독의 한 연구실에서
조용히 과학 실험에 몰두하고 있었다.
“온도가 약간만 달라져도 반응이 달라지지 않을까?”
유리 비커 너머로 고요한 실험실의 공기 안에,
그녀의 작은 목소리가 흩어졌다.
늘 치밀한 계산과 추론으로 가능한 결과의 범위를 짚어 내던 그녀는
실험 속에서만큼은 세상의 작은 이치들을 확인하며
마음 한구석에 평온을 얻었다.
하지만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의 거센 흐름이 시작되던 1989년.
거리에는 통합을 향한 열망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메르켈은 실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정치인의 연단이 실험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데이터를 수집하듯,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듯 법과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
그렇게 동독 출신의 소박한 과학자는,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어
유럽의 중심 무대에서 묵직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심리학에서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은
새로운 상황이나 규칙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능력을 말한다.
메르켈의 정치 행보는,
과학 연구에서 습득한 분석력과 논리적 사고가
어떻게 현실 문제 해결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주목해 보면,
그녀는 위기 상황(난민 사태, 유럽 금융 위기 등)을
‘위험’으로 바라보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기 위한 도전”이라는 틀로 재해석했다.
이는 과학자가 실험 실패를
‘발견의 기회’로 삼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앙겔라 메르켈은 여러 연설과 인터뷰에서
겸손과 과학적 태도를 강조해 왔다.
독일 총리 재임 시절 나왔던 스피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발언들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절제되고 현명하게 이야기해야 하며,
아직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하여 민족주의적 고립 대신
국제 협력을 호소한 연설에서,
그녀는 과학자가 위기와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를 정치 영역에 그대로 녹여냈다.
또한 여러 전기(傳記)를 통해 전해지는 일화 중에는
그녀가 학생 시절 자주 했다는 말이 있다.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면,
아마 충분히 많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실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하는 자세.
바로 그것이 메르켈이 과학자에서 정치가로 전향하며 지니고 있던 핵심 철학이었다.
메르켈의 정치 무대는
거대한 실험실과 같았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유리 플라스크 안에서,
수많은 사건이 화학반응처럼 일어났다.
유럽이 흔들릴 때마다,
그녀는 정확한 온도와 압력을 찾으려 애썼다.
너무 빨리 온도를 높이면 폭발할지 모르고,
온도를 낮추면 반응이 멈출 수도 있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 결정 하나는
실험 도중 흘려 넣는 시약과 같았다.
그것이 고통을 가중시킬 수도,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실험실 밖 과학자’로서의 면모는
끊임없이 변수와 결과를 관찰하고 조정하며
유럽의 위기를 완만하게 수습하는 데 기여했다.
과학은 종종 ‘차갑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메르켈의 행보를 보면,
‘차갑게 분석하고 따뜻하게 해결하는’ 과학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실용적 도움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데스크 위의 공식보다
머릿속 데이터보다
“인간성”을 우선시했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정교한 계획과 치밀한 분석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문턱을 넘는 데에는
서로를 향한 온기와 이해, 그리고 통합이 필요하다.
앙겔라 메르켈이 보여 준 ‘과학자의 꿈에서 정치가로’의 전환은
결국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깨어 있는
열린 마음의 실천을 상징한다.
오늘 내 눈앞에 놓인 문제도,
어쩌면 ‘실험 데이터’로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아직 다 꿰뚫어 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결론을 쉽게 단정 짓지 않는 과정이 때로 필요하다.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 번 더 질문해 보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놓친 요소는 무엇일까?”
그리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면,
의외의 답이 어디선가 반짝이며 나타날지도 모른다.
메르켈이 통일 독일의 실험실을 떠나
세계 무대 위에 한 걸음 내디뎠듯이,
우리도 익숙한 틀 밖으로 나와
조용히, 하지만 단단히 세상을 바꾸는
‘나만의 실험’을 시작할 수 있기를.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