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28
깊은 숲 속, 생명의 숨결을 머금은 녹음이 우거진 그곳,
사람이 닿지 않은 비밀스러운 세상에서
한 여성의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낯선 기척을 느낀 침팬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순간, 빛 한 줄기에 서로의 눈이 마주치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종(種)이 경계 없이 소통을 시작한다.
제인 구달.
자연의 언어를 배우고, 동물의 마음을 읽어,
인류와 야생 사이에 아름다운 가교를 놓은 사람.
1957년, 20대 초반의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대륙을 향한 동경을 가슴에 품고,
케냐와 탄자니아에 이르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당시엔 여성이 홀로 오지에서 연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라고 여겨졌던가.
하지만 그녀의 열망은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었다.
“내가 얼마나 야생을 사랑하는지, 그곳에 가서 증명하리라.”
곤베 스트림(Gombe Stream) 국립공원에 들어섰을 때,
이끼가 낀 돌길과 나무들이 만든 그늘을 헤치고,
천천히 숲 속 깊숙이 발을 디뎠다.
침팬지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했다.
제인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게
침팬지 무리와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은 경계심을 풀지 못해 멀리서 그녀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침팬지 한 마리가 제인의 가까운 지점에 내려와
나뭇가지에 걸터앉았다.
심장이 고동치는 소리가 귀 안을 가득 채웠다.
숨을 고르고, 눈을 마주쳤다.
침팬지는 이방인을 경계하는 대신,
“누구세요?”라고 묻는 듯 잠깐 멈춰 서서 바라보았다.
제인이 무언의 인사를 건네려 손을 내밀자,
침팬지는 서서히 손을 뻗어 가볍게 터치했다.
그 순간, 제인은 먼 우주의 신비를 탐험하듯
전혀 새로운 세계와 첫 교감을 나눈 셈이었다.
심리학에서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은
초기 관계 형성과 상호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한다.
야생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위협하지 않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안정적 애착을 쌓아 가는 과정이
결국 교감으로 이어진다.
구달이 침팬지를 대할 때 보여 준 “깊은 관찰과 존중”은
상호 간에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자극했고,
침팬지에게도 ‘이 인간은 위험하지 않아’라는 안정 신호를 준 것이다.
또 다른 심리학적 개념인 ‘공감 능력(Empathy)’은
단지 같은 종끼리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구달은 시선과 몸짓을 통해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침팬지는 그에 화답했다.
이처럼 감정과 태도의 미세한 교류는
종을 뛰어넘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제인 구달은 대표 저서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삶(In the Shadow of Man)』에서
야생 침팬지와의 첫 만남 당시의 경이로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으로 침팬지와 서로 손끝을 맞댄 순간,
나는 우리가 어쩌면 그리도 다른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그녀는 후일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공존은 단순히 서로의 영역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통해 모든 생명이 어우러지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는 그녀가 과학자이자 자연보호 활동가로서 강조했던
윤리적·철학적 신념을 대변한다.
침팬지와 제인이 손끝으로 나눈 최초의 교감은,
마치 오래된 그림책 속에서
두 서로 다른 세계가 이어지는 페이지를 펼친 듯한 장면이었다.
짙은 녹색 숲이 만들어 낸 무대 위에서,
인간과 동물은 각각 자신의 언어 대신 ‘눈빛’과 ‘호흡’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은 두 개의 별자리가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서로를 향해 빛을 내며
한 줄기 별빛으로 연결되는 순간 같았다.
인류가 “나는 자연을 탐구한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자연의 일부다”라고 느끼게 되는 찰나.
이때, 우리의 경계는 숲 안으로 스며들고,
침팬지의 눈동자에도 부드러운 호기심이 감돈다.
우리는 자연과 분리된 존재처럼 살아간다.
도시의 콘크리트 숲 속에서,
문득 자연을 갈망하지만,
정작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수적인 관계인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와의 교감을 통해
‘인간성’이 결코 인간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부르는 것 안에는
타 종(種)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처음 침팬지와 마주했을 때 느꼈던 떨림,
손끝에서 전해진 미묘한 체온은
연구자로서의 호기심이나 성취감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 낼 수 있는
조화로운 미래를 암시했다.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는
환경 파괴와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야생 생명들이 위협받고 있다.
하지만 제인 구달이 보여 준 진심 어린 눈 맞춤은
이렇게 속삭인다.
“자연은 적도, 자원도 아닌,
함께 살아가는 거대한 가족”이라고.
한 번쯤 마음을 잠재우고,
작고 조용한 숲길을 걸어 보자.
그러면 초록의 숨결 사이로
침팬지와 제인이 나눈 따뜻한 교감이
우리 안에도 차오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비로소
자연이 그리고 인류가 함께 나아가야 할
커다란 길목에서 다시 한번 발걸음을 내딛게 된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