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파인만, 아버지와의 실험 시간

마이스타 365 #127

by 은파랑




리처드 파인만, 아버지와의 실험 시간


한낮의 햇살처럼 맑은 호기심이

작은 손에 쥔 돋보기를 타고 세상을 비추었다.

풀잎 위에 맺힌 물방울이 기묘한 프리즘을 만들어 낼 때,

“왜?”라는 질문이 소년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때 언제나 곁에서 새삼스런 시선을 열어 준 사람,

늘 지식보다 상상을 더 소중히 여겨 준 사람,

리처드 파인만의 아버지였다.

그와 함께한 실험 시간은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어릴 적 파인만은 아버지와 함께 마당 한구석에 앉아

온갖 것들을 관찰하고 실험하곤 했다.

햇빛에 녹아나는 얼음조각,

펼쳐 놓은 신문 위를 걷는 개미,

뒷마당 탱자나무 가지 위로 날아드는 작은 새….


아버지는 으레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파인만에게 “왜 그럴까?”라고 물었다.


“얼음이 왜 녹는지 알고 싶니? 한 번 직접 만져 보자.

차갑지? 하지만 공기와 열을 주고받으면 결국 물이 되는 거야.”


어린 파인만이 손끝으로 느낀 차가움은

금세 호기심의 온기로 바뀌었다.


특히 아버지는 낯선 자연물에도 겁먹지 않고 다가가도록 격려했다.

둥지에서 떨어진 새를 품에 안았을 때,

“이 새가 어떤 종인지 이름만 외우는 건 중요하지 않아.

왜 그 깃털은 저렇게 생겼을까?

무엇을 먹으며 어디를 날아갈까?

이유와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단다.”

한마디가 파인만 안에 ‘진짜 배우는 법’을 심어 주었다.


인지발달 심리학에 따르면,

아동기에는 구체적 경험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습득하게 된다.

리처드 파인만의 아버지는 이런 학습 과정을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었다.

지식을 주입하는 대신,

아이로 하여금 직접 만지고, 보고, 느끼게 함으로써

호기심을 탐구심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사회적 학습 이론(Social Learning Theory)’과도 연결된다.

어린 파인만은 ‘아버지’라는 모델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스스로 사유하는 법을 체득했다.

“왜일까?”라는 질문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새로운 각성의 순간을 발견하게 하는 씨앗이 된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회고록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했던 대화를 자주 언급한다.

그중에서도, ‘세상의 이름(Name of things)’에 대해서

아버지가 자주 해주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새의 이름을 스페인어로,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중국어로 배울 수 있어.

하지만 그게 그 새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에게 알려 주지는 않지.

가장 중요한 건 네가 직접 관찰하고 이해하는 거야.”


이 일화는 사물을 분류·암기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상 너머의 원리와 과정을 스스로 파헤치는 학습 태도를 강조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는

매일 아침 기지개 켜는 태양빛 같았다.

나른한 공기를 깨우는 첫 빛 한 줄기가

새로운 발견의 창을 열어 주듯,

그들의 호기심도 ‘고정관념’의 어둠을 서서히 밝히며 세상을 물들였다.


잔잔한 호수 위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아버지의 한마디 “왜 그럴까?”는

파문이 되어 아들의 지적 모험을 일렁이게 했다.

그는 미시세계의 신비부터

우주적 규모의 문제까지 질문하고 탐색하는 물리학자가 되었다.

시작은 단 한 번의 호기심 어린 손짓,

그리고 아버지의 따뜻한 미소였다.


우리는 ‘정답’에만 집착한 채,

‘질문하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을 잊어버린다.

리처드 파인만의 어린 시절은,

정답이 아니라 “왜 그럴까?”라는 물음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가장 순수하고도 본질적인 사례가 아닐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어쩌면 값비싼 교구나 기술이 아닌,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질문에 대한 열정일지 모른다.

아버지와 함께 밟아 본 마당의 흙길,

손안에 올려 두었던 참새의 부드러운 깃털,

그리고 순간순간에 느껴진 “이건 왜 이런 걸까?”의 떨림,

모든 것이 파인만을 세계적 물리학자로 성장시켰다.


우리도 그렇게 ‘눈앞의 작은 미스터리’에 귀 기울여 보자.

때론 사소해 보여도,

그 속엔 우주적 발견과 연결된 실마리가 숨어 있을 수 있다.

오늘 하루, 주변에 놓인 작은 현상에 질문을 던져 보는 건 어떨까.

얼어붙은 차창에 맺히는 서리,

컵에 따른 물이 만드는 소리,

스마트폰 화면이 터치에 반응하는 원리까지.

모두가 잠재된 호기심을 깨울 수 있는

작은 실험의 무대가 될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보낸 그 시절의 실험 시간처럼,

언제든 일상 속에서

‘궁금함’이라는 창을 열어젖힐 수 있다.

그리고 문턱을 넘어섰을 때,

우리 또한 아직 모르고 있던 아름다운 진리와

자유로운 상상력이 손짓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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