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 365 #126
그들은 한때 서로의 정신을 비추던 빛이었다.
한쪽은 이성의 횃불을 들고, 무의식의 어둠을 밝혔고,
다른 한쪽은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하면 그림자는 깊어지는 법.
그들의 관계도 그러했다.
빛과 그림자가 엉켜 흐르던 그 시절,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면서도,
서로의 손을 뿌리쳤다.
1907년의 어느 날, 차가운 겨울바람이 비엔나의 창문을 흔들었다.
칼 융은 긴 여정을 마치고 프로이트의 집에 도착했다.
그의 눈빛은 호기심과 경외로 가득 차 있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는 학문의 성벽을 넘어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만남은 뜨거웠다.
융과 프로이트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정신의 심연을 탐색하며,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을 공유했다.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12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대화 속에서,
융은 새로운 스승을 발견한 듯한 기쁨을 느꼈고,
프로이트는 자신의 이론을 계승할 적임자를 찾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날, 프로이트는 자신도 모르게 씨앗 하나를 심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그는 문득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융, 이제부터 당신을 후계자로 여기겠소."
융은 잠시 머뭇거렸다.
기쁨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후계자라는 말.
그것은 하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이 반드시 자신만의 길과 같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흐르며,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무의식을 ‘억압된 욕망’의 세계로 보았다.
그의 이론에서 인간의 본질은 리비도(libido),
성적 충동이 억제된 결과였다.
하지만 융은 달랐다.
그는 인간의 무의식이 단순한 욕망의 창고가 아니라,
심층적인 상징과 원형(archetype)들이 춤추는 거대한 세계라고 보았다.
그곳에는 인간의 모든 신화와 꿈,
그리고 집단적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
갈등은 깊어졌다.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너무 제한적이라고 느꼈고,
프로이트는 융이 자신의 핵심 개념을 부정한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1913년, 학회에서 벌어졌다.
융은 자신의 논문에서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것은 스승에 대한 도전이었다.
프로이트는 실망했고, 노골적으로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편지 한 통이 융에게 도착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야겠군."
한때 12시간을 함께 이야기하던 두 사람이었다.
이제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는 이렇게 갈라졌다.
융은 갈등 속에서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대립하는 두 힘이 존재한다는 것.
빛과 어둠, 이성과 감성, 질서와 혼돈.
그리고,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한쪽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
그는 이것을 ‘개인화 과정(individuation process)’이라 불렀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신 안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한다."
융의 이 말은, 그가 프로이트와의 결별에서 얻은 교훈이었다.
진정한 성장은 스승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
융은 『인간과 상징』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무의식은 말이 아니라, 상징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꿈과 신화 속에서,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내면의 목소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욕망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영혼의 언어였다.
프로이트는 논리의 언어로 심리를 분석했다.
융은 시의 언어로 심리를 탐구했다.
그들의 갈등은 단순한 학문적 대립이 아니라,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논쟁 덕분에 심리학은 더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융과 프로이트처럼
갈등과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스승과 제자, 부모와 자식, 친구와 연인.
서로를 닮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존재들.
하지만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며,
그 안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융과 프로이트의 관계는 이렇게 말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하지만 그림자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속에는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자신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