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증의 유전적 요인과 치료의 희망

by 은파랑




기면증의 유전적 요인과 치료의 희망


우리는 삶의 리듬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졸리면 자고 깨어야 할 때 깨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단순한 원리가 무너진다. 기면증(narcolepsy)을 앓는 이들에게 낮과 밤의 경계는 흐려지고 예측할 수 없는 졸음이 삶을 집어삼킨다. 이 병은 보이지 않는 실로 짜인 운명처럼 유전자의 흔적을 따라 조용히 스며든다.


기면증은 수면 부족이나 피로가 아니다. 그것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이며 특히 히포크레틴(orex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히포크레틴은 각성과 수면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지만 기면증 환자의 뇌에서는 이 물질이 극도로 부족하거나 완전히 소실된다.


이 현상의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연구에 따르면, HLA-DQB1*06:02라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기면증 발병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면역 체계와 관련된 이 유전자는 자가면역 반응을 촉진하는데 이는 몸이 스스로를 공격하여 히포크레틴을 생성하는 신경세포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즉 기면증은 신경학적 장애가 아니라 면역 체계의 혼란이 빚어낸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졌다고 해서 모두 기면증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 환경적 요인, 바이러스 감염 등이 발병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다시 말해 유전적 소인은 씨앗일 뿐이고, 병을 싹트게 하는 것은 삶 속의 다양한 변수들이다.


기면증은 아직 완치가 불가능한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이제 우리는 그 어두운 터널 끝에서 작은 빛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기면증 치료제는 주로 각성제모다피닐, 암페타민과 REM 수면 조절제인 옥시베이트, 삼환계 항우울제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들은 증상을 완화할 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보다 근본적인 치료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손실된 히포크레틴을 인위적으로 보충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히포크레틴을 직접 주입하거나 유전자 치료를 통해 생성 능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실험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자가면역 반응을 억제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특정 면역억제제를 사용해 히포크레틴 신경세포의 파괴를 막는 접근법이 미래의 치료법이 될 가능성이 있다.


손상된 신경세포를 재생시키는 줄기세포 치료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신경과학과 유전공학의 발전이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기면증 환자들에게 삶은 끝없는 싸움이다. 어느 순간에도 졸음이 덮쳐올 수 있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몸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점점 더 깊이 이 병의 실체를 이해하고 있으며 치료를 향한 길을 열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운명'이라 불리던 것들이 이제는 '치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전적 요인은 피할 수 없지만 영향을 완화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 어쩌면 먼 훗날 기면증 환자들도 더 이상 예상치 못한 졸음에 쓰러지지 않고 원하는 순간에 눈을 뜨고 깨어 있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이해하고, 희망을 품는다.

기면증이라는 긴 꿈에서 깨어날 그날까지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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