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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마이스타 365 #49

by 은파랑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 로버트 프로스트,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 (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구절은 주문처럼 두 번 반복된다. 조용히 눈이 내리는 숲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지만 그는 곧 스스로를 일깨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고 끝나지 않은 여정이 있다는 것을


이 문장은 물리적 거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책임, 약속, 그리고 인생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여정을 가리킨다. 눈 덮인 고요한 숲은 유혹처럼 달콤하지만 시인은 그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시 길을 나선다. 이 말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남겨둔 채 안식에 닿을 수는 없다는 고요하고도 단호한 다짐이다.


가끔은 멈춰 서고 싶다.

눈처럼 조용한 저녁, 바람도 말없이 지나가는 숲길에서

세상이 나를 부르지 않고 내가 세상을 부르지 않아도 되는 순간

고요히 눈 내리는 풍경 속에 스며들고만 싶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작은 속삭임이 들린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삶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발자국이다.

잠시 눈이 덮인 길 위에 나를 숨기고 싶지만

내가 걷기로 약속한 길은 아직 눈앞에 있다.


누군가를 위한 다정한 말 한마디

나를 향한 책임 한 조각

세상에 남긴 작은 흔적 하나


이 문장은 유혹과 책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붙잡아준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도 쉬고 싶은 마음도 모두 이해한다고 말해주면서도 끝내 다시 길을 걷게 만든다.


가끔 우리가 가는 길의 의미조차 모를 때가 있다.

그저 걷는다.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나 자신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걸었던 길 위에

고요히 눈이 쌓이고

길을 본 누군가가 말하겠지


“그 사람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하며 끝끝내 걸었구나.”


이 밤, 당신이 어디에 있든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 길은 당신만이 걸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시라는 것을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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