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 위에 선 자에게

마이스타 365 #53

by 은파랑




시간의 강 위에 선 자에게


자주 묻는다.

“왜 이 시대에 태어났을까?”


때론 너무 빠른 기술의 물결에

때론 너무 거센 변화의 바람에

내 자리가 어지럽고

내 길이 흐릿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17세기 스페인 신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말한다.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충실하라. 아무리 뛰어난 인물도 시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위대한 인물도

그가 발 디딘 땅과 숨 쉬는 공기 위에서

자신의 빛을 만들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간디도

마더 테레사도


자신이 처한 시대와


싸우고

품고

이해하며


그 속에서 길을 냈다.


시대는 바람과 같다.

거스를 수 없지만

돛을 세워 방향을 잡을 수는 있다.


흐름을 읽는다는 건

굴복이 아니라 이해의 시작이고

나를 던질 타이밍을 아는 지혜의 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살 수도, 미래에 머무를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이 시대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지금이라는 시대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만의 길을 만들 수 있다.


시대는 우리를 가둔 벽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의 풍경이.


은파랑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들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삶은 달라졌다.” — 한강


한강의 이 문장은 잔잔한 흐름 속에 숨어 있는 변화의 순간을 이야기한다. 변화는 언제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오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던 시간들,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그 나날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 한 순간 삶은 조용히 방향을 튼다. 아무것도 아닌 날들의 연속이 실은 삶을 준비하고 있었던 시간임을, 이 문장은 조용히 속삭이고 있다. 변화는 기다림의 다른 얼굴이며, 삶은 때로 예고 없이 고요를 깨고 새로이 펼쳐진다.


매일이 비슷했다.

해는 뜨고 지고,

나는 먹고 자고,

그저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창밖의 나무도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커피는 늘 비슷한 온도로 식었다.

사람들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지나간 날들은

마치 빈 노트의 페이지 같았고,

나는 그 속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문득,

삶이 달라졌다.


낯익던 거리가 다르게 보이고,

무심히 듣던 음악에

눈물이 차올랐고,

오랫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무언가가

내 마음 가까이 와 있었다.


그 변화는 거창하지 않았다.

소리도 없이,

이름도 없이,

그저 바람이 방향을 바꾸듯

살며시 찾아왔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들’이

사실은 가장 조용한 준비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모든 씨앗은 흙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성장을 한다는 것을.


그래서 삶은,

우리가 눈을 돌린 사이

조용히 꽃을 피운다.


한강의 문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걸까?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자라고 있었고,

삶은 우리 몰래 방향을 잡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장 평범했던 날들이,

사실은 가장 위대한 변화의 서곡이었다는 것.

이 문장을 기억하며,

오늘의 고요함 속에도작은 희망을 심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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