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몸, 여럿의 나, 디소시아티브 정체감 장애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17

by 은파랑




하나의 몸, 여럿의 나, 디소시아티브 정체감 장애라는 마음의 분열


거울 앞에 선다. 익숙한 얼굴이다. 그러나 눈동자 너머에서 낯선 감정이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나인데 어떤 순간에는 내가 아닌 듯한 무대 위의 다른 배우가 이 몸을 빌려 살아가는 것만 같다.


디소시아티브 정체감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 한 존재 안에 둘 이상의 자아가 공존하며 번갈아 나타나는 이 상태는 살아남기 위해 마음이 택한 마지막 피난처, 가장 절박한 자기 보호의 방식이다.


DID는 과거 ‘다중인격장애’로 불렸던 질환이다. 이 장애는 대부분 심각한 트라우마 특히 어린 시절의 반복적인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와 깊이 연결된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마음은 하나의 자아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직감한다. 그래서 자아는 쪼개진다. 어떤 자아는 고통을 감당하고 어떤 자아는 세상 앞에 나서며 또 다른 자아는 그날의 기억을 봉인한다.


이처럼 자아의 분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자기를 나누어 놓고 살아남는다. 그래서 DID는 병리적인 것인 동시에 절박한 생존의 증거이기도 하다.


때때로 사람들은 DID를 오해한다. “그냥 관심을 끌고 싶어서 아닌가요?”,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이 장애는 상상 이상의 깊은 고통을 동반한다. 각 인격은 서로 다른 이름, 성격, 말투, 기억, 심지어 생리적 반응을 지닐 수 있다. 어떤 자아는 왼손잡이인데 다른 자아는 오른손잡이일 수 있으며 시력이 다르거나 알레르기 반응조차 달라지기도 한다.


그들은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아 간 전환은 종종 의식적 통제가 불가능하며 전환 뒤의 기억은 사라진다. 그러니 외부에서 보기엔 ‘기억의 공백’, ‘급격한 감정 변화’, ‘이해되지 않는 말투와 행동’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양한 자아를 지닌다. 직장인으로서의 나, 자녀로서의 나, 친구로서의 나 그러나 DID에서의 자아들은 훨씬 더 분명한 경계와 독립된 정체성을 지닌다. 이들은 서로 대화하거나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한 자아가 다른 자아를 보호하려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치료자들은 DID 환자를 ‘하나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작은 공동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공동체는 때로 혼란스럽고 파괴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깊은 의미의 연대와 회복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DID의 치료 목표는 자아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각 자아가 지닌 역할과 상처를 이해하고 공존의 방식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다. 처음엔 서로를 부정하고 두려워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를 알게 되고 서로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치료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신뢰를 쌓고 자아 하나하나와 소통하며 가장 깊은 상처를 드러내는 데까지는 수많은 밤과 눈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정은 결코 헛되지 않다. 한 조각씩 이어 붙인 자아의 퍼즐 속에서 진짜 ‘나’의 형상이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DID는 드물고 낯선 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우리 곁에 조용히 존재한다. 특별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그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은 가장 강한 사람들 중 하나다. 그들의 내면엔 감당할 수 없던 슬픔과 외로움, 공포가 고요히 잠들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에 ‘연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이다.


하나의 몸, 여럿의 나

그 말은 혼란이 아니라 고통을 버티며 살아낸 존재에 대한 깊은 경의다.


분열은 무너짐이 아니라 살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선택 끝에서 우리는 조용히 손 내밀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은 괜찮습니다. 당신 모두가."

말 한 줄이 그들 안의 수많은 ‘나’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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