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22
- 그 말이 가진 무게에 대하여
“그냥 기분 탓이야.”
우리는 너무 쉽게 이 말을 건넨다.
불편하다는 누군가의 표정 앞에서
말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친구에게
아무 이유 없이 눈물 흘리는 연인에게
그 말은
기분은 하찮고
감정은 근거 없으며
곧 지나갈 통증이라는 듯이
모든 무게를 ‘탓’이라는 한 단어로 밀어낸다.
하지만 정말 ‘기분’은 탓일까?
스쳐가는 감정일 뿐일까?
감정은 흔들리는 마음의 파동이 아니라
심리적·생물학적 현실이다
심리학자 수전 데이비드(Susan David)는 말했다.
"감정은 정보다."
기분은 단지 기분이 아니다.
그건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알람이며
생존과 연결된 몸의 신호다.
불안은 안전하지 않다는 뇌의 경고고
우울은 멈추고 쉬어야 한다는 감정의 브레이크다.
짜증은 경계선이 침범되었다는 표시고
외로움은 연결을 갈망하는 신호다.
이처럼 기분은 생각보다 과학적이고 생리적인 감각이다.
도파민, 세로토닌, 코르티솔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미세한 변동이 말투, 표정, 사고방식까지 뒤바꾼다.
그러니 “그냥 기분 탓이야”라는 말은
고장 난 기계에게 “그냥 소음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진짜 문제를 묻어두고 감정을 사소하게 치부하는 말
언어는 위로이자 도려내는 칼이다
언어는 강력하다.
말 한마디는 누군가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고
때론 가장 가까운 사람의 말이 가장 깊은 상처가 된다.
“기분 탓”이라는 말에는
그 사람이 느끼는 슬픔이나 두려움, 혼란이
정당하지 않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그것은 감정을 무효화시키는 말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감정의 부정(invalidation)이라 부른다. 감정이 부정당하면 사람은 점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왜곡하며 결국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는 뭘 느껴도 틀릴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감정 표현을 죄처럼 여기거나
자기감정을 타인에게 쉽게 내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기분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말”일 때가 있다
문학가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기분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글을 쓴다. 기분은 나의 세계다.”
기분은 설명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인간이 느끼는 가장 진실한 신호일 수 있다.
어떤 날은 괜찮다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공감이다.
“왜 그렇게 느꼈어?”가 아니라
“그럴 수 있어.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말
‘기분 탓’이라고 넘기기 전에 감정의 이름을 함께 붙여주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살리는 방식이다.
결국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사회는 마음을 외롭게 만든다 우리는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한 사회에 살고 있다.
늘 괜찮은 척, 밝은 척, 강한 척하며 기분을 무시당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나 아무리 감추어도 감정은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억압된 감정은 몸에, 관계에, 삶 전체에
작은 금으로, 침묵의 균열로 번져간다.
“그냥 기분 탓이야.”
이 말은 너무 가볍게 던져졌지만 누군가의 마음에는 오래도록 무거운 돌이 된다.
그러니, 그 말 앞에서 잠시 멈추자.
‘기분 탓’이 아니라 기분의 의미에 귀 기울여보자.
그것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은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