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다양한 얼굴들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21

by 은파랑




우울증의 다양한 얼굴들


우울증은 하나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슬픔처럼 보이지도 않고 눈물로만 표현되지도 않는다.


때로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무표정 속에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 입가의 힘없는 곡선 속에 숨어 있다.


우울증은 감정의 단일한 색이 아니다.

그것은 회색의 스펙트럼을 품은 질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속은 끓임없는 자기 검열과 무기력, 자책과 공허가 휘몰아치는 전장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종종 알아채지 못한다.

가장 활발한 사람, 가장 웃음이 많던 사람, 가장 성실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울증의 가장 흔한 얼굴 중 하나는 무기력감이다.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쌓여 있지만 손끝은 움직이지 않는다.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산을 오르는 일처럼 느껴진다.

모든 행동은 부자연스럽고 모든 말은 공허하다.

무기력은 게으름과는 다르다.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침묵당한 상태인 것이다.


우울증은 때로 화로 변장한다.

자신도 이유를 모른 채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고

주변 사람에게 예민하게 반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우울의 분노화(anger turned outward)라고 설명한다.


자신을 향한 실망과 비난이 타인을 향해 발산될 때

우울은 공격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그래서 가족 간의 갈등이나 연인 간의 다툼 뒤에는

말하지 못한 우울이 숨어 있기도 하다.


의외로 지나치게 바쁜 사람도 우울할 수 있다.

‘가만히 있으면 나 자신을 마주해야 하니까.’


이런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공백이 두려워 바쁘게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나며 스스로를 밀어붙인다.


그러나 밤이 되면 밀려오는 공허는 감출 수 없다.

정신의학에서는 이것을 고기능 우울증(high-functioning depression)이라 부른다. 겉으로는 성취가 있지만 내면은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춰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아니다.

과학적으로도 우울증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지속적인 두통, 소화 불량, 만성 피로, 수면 장애, 식욕 저하 등은 모두 우울이 보낸 비언어적 신호일 수 있다.


심리적 고통이 뇌를 통해 자율신경계를 교란시키고

몸을 통해 증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신과 진료 대신 내과를 먼저 찾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조심해야 할 얼굴은 웃는 얼굴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웃는 우울증(smiling depression)이라 부른다.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고 농담도 잘하고 유머도 풍부하지만

내면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이들은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주변이 무너질 것 같아서' 아무 일 없는 듯한 연기를 한다.


그래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들은 홀로 가장 깊은 어둠을 건넌다.


이렇듯 우울증은 다양한 얼굴로 곁에 머문다.

슬픔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포착되지 않는 복합적인 고통.

그것은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인지적 요소가 얽힌

다층적 질환이자 존재의 비명을 동반한 침묵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고 들어야 한다


‘요즘 어때?’라는 인사는

형식적인 안부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다가가는 질문이 될 수 있다.

우울은 드러내기 힘들기에

작은 관심과 기다림이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첫걸음이 된다.


우울은 누구나 걸릴 수 있다.

강한 사람도, 웃는 사람도, 열심히 사는 사람도

중요한 건 그 얼굴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얼굴 속 진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곁에 가만히 앉아 있어 줄 수는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일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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