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하루를 견디는 문장들 #220

by 은파랑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말도 곱고 마음도 깊었다. 내 얘기를 잘 들어주었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었다. 누가 봐도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람과 함께 있을수록 마음이 지쳐갔다. 애초에 그런 사람에게 지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인데 왜 자꾸 지칠까?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감정 노동(emotional labor)’ 혹은 ‘공감 피로(empathy fatigue)’로 설명하기도 한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도 끊임없이 상대의 감정에 맞추고 배려하는 관계는 보이지 않는 무게처럼 마음을 누른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계속 그 사람의 기분을 먼저 살펴야 하고 조심해야 하며 내 감정을 숨겨야 한다면 그건 ‘편안한 관계’가 아니다.


좋은 사람은 때때로 너무 좋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잃어가며’ 착한 사람이 된다. 자기감정을 말하지 않고 다 받아주고 미소 짓는다. 그러면서도 기대한다. “내가 이렇게 하는데 너도 나처럼 해주겠지.” 기대가 말은 없지만 공기처럼 흐르고 나도 모르게 기대에 갇힌다. 말하지 않아도 부담이 되고 침묵조차 무언의 요구처럼 느껴진다.


커뮤니케이션학에서는 이를 ‘관계의 불균형’이라고 부른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의 정서적 에너지가 계속 엇갈릴 때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면에는 피로와 긴장이 쌓인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그 뒤에 오는 말은 대개 피로의 고백이다. 피곤하고 힘들고 뭔가 얽매이는 느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의 인간관계를 ‘액체화된 유대’라고 했다. 깊고 진득한 유대가 아니라 형태 없이 흐르는 관계들. 겉으로는 친절하지만 속을 꺼내 보이면 당황하거나 거리를 두는 관계들. 좋은 사람은 많지만 깊이 있는 관계는 드물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사람 곁에서도 외롭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해진다.


문제는 그 사람이 나쁘지 않다는 이유로 내 지침을 합리화해 버린다는 데 있다. "내가 예민한가?", "내가 나쁜 사람인가?" 자책하게 되고 말 못 하고 미소 지으며 그 자리에 남는다. 그리고 결국엔 아무 말 없이 관계를 멀리하게 된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에 그저 서서히 사라지는 선택을 한다. 지친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사람을 떠나는 건 어쩐지 죄책감이 되니까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은 사람’과 ‘편한 사람’은 다르다.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결국 나를 지치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심스러워야 하는 사람이었고

내 감정을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관계였을지 모른다.


좋은 사람인데도 자꾸 지친다면

그건 아마 내가 나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의 신호일 것이다.

좋은 사람을 탓하지 말자. 그리고 나 자신을 탓하지도 말자.

다만 이렇게 말해주자.


"나는 편안한 사람이 필요해."

"내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자리를 원해."

그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작고 정직한 권리다.


은파랑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시간의 힘을 믿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