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청국장

발효된 시간의 향기

by 은파랑




충북의 들녘,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아침

장독대 뚜껑을 열면

세월이 발효시킨 냄새가 먼저 숨을 훑는다.

“푹, 쿰쿰, 싸아...”

코끝이 저릿해질수록

속은 더 뜨뜻하게 풀린다.

청주 청국장의 숨결,

구수함과 낯섦 사이를 오가는 시간의 냄새다.


청국장은 쉬운 음식이 아니다.

냄새부터 다가서기 어렵고

맛 또한 단정하지 않다.

그러나 한 숟갈 삼키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뭔가 복슬복슬 올라온다.

쓱 비빈 밥에 국물 한 숟갈,

거기에 열무김치 한 젓가락

조합은

어릴 적 외할머니 집 부엌 같은 풍경이다.


콩은 삶아지고

덧입혀진 볏짚의 세균은

알고 보면 자연의 지혜다.

손으로 눌러 띄우고

햇살 아래 하루하루 뒤집어가며

구수하게 숙성되는 청국장


청주는 예로부터

정성의 중심이었다.

땅이 비옥하고

사람의 손길이 부지런한 고장

그래서 청국장은

손맛과 땀, 발효된 정이다.


뚝배기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된장보다 더 진하고

찌개보다 더 깊은 숨결이 피어난다.

두부, 호박, 파, 마늘, 청양고추

재료는 검소하지만

풍미는 사치스럽다.


“보글보글, 훅... 쩝쩝”

국물은 구수하다 못해 고소하고

입 안 가득 퍼지는 콩알의 부드러움은

소리 없이 풀리는 마음 한 조각이다.


청국장은 몸을 덥히는 음식이지만

마음을 녹이는 음식이다.

속이 허하고

기운이 없고

왠지 살아지지 않는 날

청국장 한 그릇이면

기운이 아니라

살아갈 힘이 난다.


청주의 청국장은

향기부터 깊다.

깊은 냄새는

오히려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무는 힘이다.

같이 밥상에 앉아

청국장 앞에서 웃을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남이 아니라는 뜻

그건 정이 담긴 발효의 언어다.


청국장은 시가 된다.

콩알 하나하나가 음절이 되어

구수하고 뻐근한 사연을 들려준다.

그건 풍경이자 사람이고

청주의 고요한 밭에서 올라오는

삶의 온기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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