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게국지

바다와 땅이 익혀낸 서해의 기억

by 은파랑




서해의 바람은 짭조름하다.

모래밭 끝 갯벌 위에 노을이 눕고

굽이치는 파도 사이로

태안의 바다는 매일같이

소리 없이 게국지를 끓인다.


게국지는 김치찌개인가, 해물탕인가

경계는 불분명하다.

묵은 김치

서해안에서 갓 잡은 꽃게

잘게 썬 파와 고추, 들깻가루

그리고 진한 육수가 한데 어우러져

보글보글 끓을 때

그것은 서해안 어민들의 정서가 된다.


게딱지에서 배어 나온 단맛

묵은 김치의 시큼한 숨결

두 가지가 부딪혀

입 안에선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바다 같기도 하고 밭 같기도 한 맛을 낸다.


꽃게

두툼한 껍질 아래

바다의 단맛을 오롯이 숨기고 있는 존재


김치

세월을 견뎌낸 배춧잎 한 장 한 장이

바람과 소금의 기록을 간직한다.


무와 파, 청양고추, 마늘

땅에서 나서 땅을 닮은 것들

이들이 바다와 만날 때

게국지는 완성된다.


게의 다리 사이로 국물이 스르륵 스며들고

묵은 김치가 흐물흐물 녹아내릴 무렵

솥뚜껑이 들썩들썩

들깻가루는 토닥토닥 위를 덮는다.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사각사각 김치의 결

쭈득쭈득 게살이 빠지는 소리

후끈후끈 고추의 기운이

혀 끝에서부터 속을 지글지글 달군다.


그 맛은 단순하지 않다.

겹겹의 풍경처럼

먹을수록, 또 끓일수록

깊어진다.


예부터 태안 어촌의 사람들은

봄이면 남은 김치에

꽃게를 넣고 끓였다.

봄 게는 살이 꽉 차

게장보다도 국지가 더 좋다는 말이 있었다.


게국지는

비 오는 날 외양간에서 돌아온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서 갓 돌아온 어머니가

급하게 끓여내던 살림의 음식이었다.


때로는 꽃게가 아닌

민물게나 황석어를 넣기도 했고

넉넉지 못할 때는 멸치로 국물을 냈다 한다.


그래서 게국지는

늘 있는 것 안에서 정성을 다한 찌개

지금보다 먼저 살아낸 사람들의 지혜였다.


게국지는 말이 없다.

그러나 한 숟갈 머금으면

바다와 땅이 서로를 품는 순간이 느껴진다.


그건 사랑이자 화합이다.

짜고, 시고, 맵고, 구수한

온갖 맛이 부딪히다가도

끝내 조용히 입 안에서 하나가 된다.


서해의 바람처럼 너그럽고

태안 사람들처럼 투박하지만 따뜻하다.


태안 게국지

그것은 계절을 견딘 맛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은

바다의 기억과 삶의 힘이 담긴 한 그릇의 시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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