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추어탕

거칠고 부드러운 사이

by 은파랑


남원의 아침은 물안개로 시작된다.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온 바람이 강 위를 스치면 물은 잠시 말을 잃고 고요해진다.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강의 것을 길어 올려 다시 삶으로 데워왔다. 이곳의 음식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몸을 먼저 생각한다. 한 그릇을 비우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음식, 남원 추어탕이다.

뚝배기 속 추어탕은 처음부터 뜨겁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들깨의 고소함이 공기를 채운다. 한 숟갈 뜨면 국물은 걸쭉하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미꾸라지를 곱게 갈아 넣어 입안에서는 부드르르 풀리지만 안에 담긴 힘은 단단하다. 첫맛은 구수하다. 뒤이어 담백 그리고 끝에 남는 것은 은근한 흙내음 같은 자연의 여운이다. 고추와 마늘이 더해지면 얼큰하게 숨을 열어주고 산초가루를 살짝 뿌리면 톡 하고 향이 튀어 오른다. 이 한 그릇은 회복에 가깝다.

남원 추어탕의 중심은 미꾸라지다. 강에서 자란 이 작은 생선은 단백질과 칼슘, 각종 미네랄을 품고 있다. 여기에 들깨가루가 더해진다. 고소함을 더할 뿐 아니라 국물의 질감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배추, 시래기, 마늘, 고추. 모든 재료는 화려하지 않지만 서로를 보완하며 한 방향으로 모인다. 이 음식에는 과함이 없다. 대신 균형이 있다.

추어탕은 예로부터 농번기와 환절기에 먹던 음식이었다. 힘을 써야 하는 날 혹은 몸이 약해지는 계절에 사람들은 한 그릇으로 스스로를 지켰다. 특히 남원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넣는 방식으로 유명하다. 이는 재료를 남김없이 활용하려는 지혜이자 영양을 온전히 담아내려는 선택이었다. 소박한 방식이지만 안에는 삶을 버티는 방법이 담겨 있다.

남원의 추어탕은 입보다 몸이 먼저 이해하는 음식이다. 먹고 나면 따뜻함이 천천히 퍼지고 속이 조용히 정돈된다. 이 음식은 말한다. 빠르게 채우기보다 깊게 채우라. 지친 날, 이유 없이 힘이 빠지는 날 그럴 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이렇게 묵묵한 한 그릇일지도 모른다. 남원의 추어탕은 그렇게 남는다. 조용히 하지만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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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은파랑. 토닥토닥' 출간작가. 복잡한 마음을 단순하게 풀어내는 글을 씁니다. 지친 하루에 작은 쉼이 되는 문장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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