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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Jan 07. 2020

오로라, 오로라 거리길래 나도 볼 줄 알고 떠난 거거든

아이슬란드에 있는 10일 동안 보긴 보겠죠, 오로라?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에서였다. (이렇게 미디어의 힘이 대단합니다.) 남자 배우 셋이서 말도 안 되는 대자연과 밤하늘을 뒤덮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아이슬란드로 떠난 여정을 그렸던 편은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인상은 깊었으나 '아 많이 추웠겠다. 와 자연이 멋있네. 경관이 수려해.' 정도였지 사실 엄청 가보고 싶다거나 버킷리스트라거나 아이슬란드 여행을 죽기 전엔 꼭 가보아야겠다 하는 목표 의식은 없었다.


유럽으로 떠날 때만 해도 아이슬란드는 내 희망 여행지 리스트에 들지 못했다. 사실 대학 시절 추운 곳에서 학교를 다녀 강추위와 눈폭풍에 질린 탓일까. 눈과 추위로 가득한 그곳은 내게 충분히 매력 어필을 하지 못했다. 



모로코에서의 사막 투어를 함께했던 낙타 친구들



트리거(trigger)는 사막이었다. 사하라를 다녀오고 갑자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막도 가봤는데, 오로라도 함 잡아볼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사막을 다녀와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아이슬란드 조사에 돌입했다. 아이슬란드는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 한복판에 있었고, 안 비싼 게 없으니 비상식량을 챙겨가라는 조언을 듣고 프라하에 있는 한인마트를 털었다.


본격 프라하 한인마트 털기.jpg


그렇게 남들은 꽃피는 봄이 오는 3월, 계절을 거슬러 아직 춥디 추운 아이슬란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심지어 프라하에서 아이슬란드까지 직항으로 가는 비행기도 없어 코펜하겐에서 경유를 했다. 이번 여행의 관건은 오로라였는데, 3월은 오로라를 만나기에 썩 좋지는 않은 시기였다. 오로라 헌팅을 위한 오로라 지수 체크 어플까지 다운로드를 받아놓고,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경유했던 코펜하겐항에서 만난 미니 스타벅스 (왼) ㅣ 아이슬란드 가던 비행기에서 읽었던 <라틴어 수업> (오)



아이슬란드 공항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할 일은 면세점에서 술 사기. 아이슬란드 시내에선 술을 구하기가 어려워 (그리고 비싸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공항의 면세점에서 술을 많이 많이 많이 사야 했다. '오로라를 보면서 아이슬란드산 보드카를 한 잔 해야지'라는 로맨스에 부푼 마음과 함께. 그렇게 렌터카의 트렁크 가득 술을 싣고,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의 마트에서 이틀 치 식량도 구비하고, 미리 예약해둔 에어비앤비에서 아이슬란드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레이캬비크 공항 면세점 술 쇼핑


그리고 대망의 첫째 날, 우리가 아이슬란드에 머문 기간 중 오로라 지수가 가장 높은 날을 맞이했지만, 오로라의 ㅇ도 마주칠 수 없었다. 우리가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는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 자리한 집이었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 오로라를 보기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로라는 만만하지 않았다. 미디어에선 다들 오로라를 보니까 우리도 당연히 볼 줄 알았는데, 오로라 요 놈이 생각보다 (엄청) 쉽지 않은 놈이었던 거다. 


결국 오로라는 포기하고 레이캬비크에서 사 온 돼지고기와 프라하 한인마트에서 사 온 김치를 넣고 김치찌개와 목살구이를 거하게 해 먹고는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은 오로라를 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누구에게 하는지도 모르는 기도와 함께.


이제 오로라는 운빨이다.

 

레이캬비크 시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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