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 Jan 12. 2020

웰컴 투 더 핫도그 월드
= 링로드 투어의 시작

링로드 투어, 이제 시작합니다.

어떤 때에 내가 아이슬란드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냐면, 차 밖에 펼쳐진 광활한 설원이 보일 때다. '여기 사람 사는 곳 맞지?' 싶을 때쯤 조그마한 오두막이 나타나고, 떼를 지어 산책을 하는 말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차 안에서 '수제 핫도그'를 만들어 먹을 때.



아이슬란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제일 많이 마주하는 풍경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방법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은 렌터카다. 차를 빌리면 보통 링로드 투어라는 것을 하는데, 말 그대로 '링로드' (우리나라로 치면 1번 국도이려나?)를 쭉 따라 그 근처의 유명한 명소를 도는 것이 링로드 투어다. 링로드 투어를 하면 아이슬란드의 동, 서, 남, 북을 얼추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루트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북동쪽에 있는 간헐천, 게이시르 (Geysir)



<꽃보다 청춘>에도 나온 유명한 게이시르굴포스. 역시나 가장 유명한 명소들답게 아이슬란드에서 좀처럼 보기 쉽지 않은 대형 관광버스도 주차장에 서있을 정도다. 그만큼 사람이 정말 많다. 사실, 게이시르는 최근 점점 활동이 뜸해 예전만큼 화력(?)이 크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사람이 많아서 그랬는지, 게이시르는 별 감흥이 없었다. 물론, 내게 감흥이 없었다는 거다. (취향 존중!) 



아이슬란드의 유명 폭포 중 하나인 굴포스 (Gullfoss), 황금 폭포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굴포스는 거대하다. 거대하고 광활하다. 게이시르에 사람이 너무 많아 약간 지친 상태로 굴포스에 도착했는데, 굴포스의 실체를 보고 그 지친 마음이 씻겨 내려갔다. 바람도 엄청 불고, 그만큼 엄청 추운데,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왜, 엄청 시원한 국물을 먹었을 때 '아, 전날 술 좀 먹을걸' 싶은 후회(?)가 들듯이, '아, 어제 좀 체할걸' 하는 생각이 0.1초 지나갔다. 


대학 시절, 나이아가라 폭포가 동네 폭포라 웬만한 폭포는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굴포스는 '마, 이게 아이슬란드 클라스다.' 하고 뒷짐 지고 배를 쭉 내밀고 있는 느낌. 그런데, 인정. 굴포스는 차원이 달랐다. '아, 이제 진짜 아이슬란드 여행이 시작되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정류장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의 매 점심을 책임진 핫도그, 너란 녀석



웰컴 투 더 핫도그 월드 (핫도그 세 개만 주세요.)

<꽃보다 청춘>의 명대사, '웰컴 투 더 핫도그 월드'. (조정석 야나두 신드롬의 태초가 이곳에 있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로드 트립을 할 때에 식당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마트나 식당이 있는 마을 사이의 거리가 멀어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꽤나 많은 거리를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점심은 보통 차 안에서 해결을 한다. 그리고 이때 가장 간편하고 빨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핫도그. 그래서 마트에 갈 때마다 꼭 사는 것이 핫도그 재료다. 여행자들을 위해서 그런 건지,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핫도그를 정말 많이 먹는 건지 모르겠으나 마트엔 핫도그 재료가 잘 구비되어 있다. 소시지도 종류별로 다양하고, 토핑용 마늘 후레이크, 피클 등의 브랜드도 다양하고, 핫도그에 뿌려먹을 소스도 엄청 많다. 


핫도그가 간편하기만 해서 먹는 것은 또 아니다. 아이슬란드는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나라다. 그만큼 웬만한 식당의 메뉴 가격도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여행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이해해주는 것은 핫도그뿐. 그나마 소스도, 소시지도, 토핑도 취향대로 다양하게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 질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매일 점심은 어쩌다 핫도그로 배를 채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링로드 투어는 'Welcome to the hotdog world'가 맞긴 하다. 어찌 보면 구글 번역이 문맥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파악한 걸지도 모르겠다.



폭포의 뒤에서 폭포를 구경할 수 있는 셀야란드포스 (Seljalandfoss)


그렇게 아이슬란드 링로드 투어의 시작은 수많은 폭포들과 함께 했다. (사실 폭포의 이름도 기억이 다 자세하게 나지 않는다. 당시에 다이어리에 적어 두었어서 다행이다.) 아직도 이 지구가 수백 년, 수천 년 혹은 수억 년이 걸려 만들어낸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는 이 곳에 내가 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눈 정화 제대로 하고 갑니다.
더불어 마음 정화도 함께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전 15화 오로라, 오로라 거리길래 나도 볼 줄 알고 떠난 거거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