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트래킹을 하러 스카프타펠(Skaftafell)로 향했다. 빙하 트래킹은 아이슬란드에 오면 꼭 한다는 여러 가지 액티비티 중 하나다. 날씨가 우중충한 덕분에(?) 몸도 찌뿌둥했던 우리는 초급자 코스에 도전했다. 사실 초급자 코스도 만만치 않다는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 몸을 사렸다.
빙하 트래킹을 할 곳은 스카프타펠 국립공원에서도 전용 밴을 타고 안쪽으로 좀 들어가야 하는데, 그곳의 광경이 참 신기했다. 겨울왕국의 트롤들과 비슷하게 생긴 이끼 낀 바위산이 우리를 맞이했다. 금방이라도 데굴데굴 굴러와 노래를 할 것만 같이 생겼다.
빙하는 어디 있나 싶을 때쯤 푸르스름한 빙하가 나타났다. 본격적인 빙하 트래킹 전, 우리는 모두 모여 빙하 트래킹 전용 장비를 장착했다. 그리고 같은 그룹의 멤버들과 서로 인사하며 빙하 트래킹을 하며 주의할 점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만 내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오늘 우리와 함께 트래킹을 할 한 노부부에게로 말이다.
'빙하 트래킹은 젊은 사람들도 쉽지 않다던데, 안 힘드실까? 중간에 올라가다 멈추시려나?'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던 그 노부부가 괜스레 걱정됐다. 한국에 계신 우리 할머니 생각도 나고, '어르신들은 한번 뼈가 부러지면 잘 안 붙는다던데'하며 그들의 뼈는 괜찮은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런 걱정은 나 혼자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우리의 셰르파가 되어 줄 아이슬란드 가이드도 그들에게 천천히 가도 되니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둥, 넘어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라는 둥 그들에게 온 관심을 쏟았다.
그들은 모두의 관심과 걱정이 섞인 눈초리를 받으며 트래킹을 시작했다. 남들의 생각과 달리 걱정이라곤 하나도 없는 해맑은 표정과 함께.
왕복 도합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트래킹은 말 그대로 빙하 위를 걷기 때문에 아무리 초급자 코스라도 쉽지 않다. 심지어 눈 밑에 땅이 있는지, 뻥 뚫린 크레바스인지 알 턱이 없어 경계를 풀면 안 된다. 신경을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그냥 등산하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더욱 컸다.
가다 섰다를 반복하다 보니 나는 우리 그룹을 뒤에서 겨우 쫓아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다시 생각나는 그 노부부. 앞을 슬쩍 내다보니 아직도 굳건히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저런, 또 편견이었구나. 내 코가 석자였는데, 누가 누굴 걱정하나 지금.
트래킹 코스는 생각보다 더 험난했다. 빙하 사이 좁은 벽을 기어서 올라가기도 하고, 밧줄을 붙잡고 빙하 위를 살금살금 건너가기도 했다. 그래도 매 순간이 신기한 경험이었다. 3월의 아이슬란드에서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는 파란색 빙하가 눈 앞에 가득 펼쳐져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겨울왕국의 엘사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코발트빛의 빙하들에 둘러 쌓여 있다 보니 바닷속에 들어온 느낌도 들었다. 모아나 초반부에 어린 모아나가 파도에 둘러싸였을 때의 그 느낌!
겨우겨우 오늘의 반환점에 도착했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나는 헥헥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느라 바빴다. 반면 내가 너무나도 주제넘게 걱정했던 그 노부부는 너무나 여유로운 표정과 함께 배낭에서 당 충전을 위한 달다구리를 꺼내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이쯤 되면 이런 의문이 슬쩍 고개를 든다.
'혹시 아이슬란드 사람인가? 그냥 동네 뒷산 가듯이 너무 자주 와서 안 힘든 것 아닐까?'
땡. 그들도 여행객이었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퇴직하고 함께 여행 다니는 노부부. 그들 또한 우리처럼 설렘을 가득 안고 아이슬란드의 대자연을 탐험하러 온 모험가였다. 어쩌면 그들에게 아이슬란드는 우리보다 더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론 눈폭풍 속에서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고, 춥고 건조한 아이슬란드의 겨울 기후는 여행객들이 여행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살아생전 쉽게 마주할 수 없는 풍경으로 그 희생을 보상받는다. 그리고 그 풍경을 마주할 설렘을 안고 이곳에 도착한다. 이 노부부 또한 그러했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들이 보상받을 그 대단한 풍경에 대한 설렘으로 용기를 낸 거다.
청춘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사전에서는 청춘을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로 정의했다. 즉,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가 청춘이며, 이때를 인생의 젊은 나이로 칭한다는 것이다.
일명 한국 나이, Korean age에 대한 문제가 슬금슬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태어나면서 바로 한 살을 먹는 우리나라의 조금 이상한 나이 체계는 보통 만 나이를 세는 다른 나라의 나이 셈법과 좀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들은 대체로 본인의 글로벌 나이보다 많게는 두 살, 보통은 한 살 많게(?) 살아간다. 어차피 각자 나이 세는 방법이 이렇게도 다른데, 굳이 인생의 젊은 나이를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로 특정지어야 할까?
꿈은 설렘을 불러오고, 설렘은 용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용기는 도전이라는 삶의 활력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희망이 생긴다. 사는 게 참 힘들고 팍팍해도, 아직 '꿈'에 설렐 때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이 노부부도 마찬가지였고.
그렇다면 청춘은 정말 사전적 의미의 '젊은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뭐 그런 걸까?
아니,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뭐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설레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을 덧붙여본다. 오늘 나는 노부부의 설렘 가득했던 그 얼굴에서 그들의 가장 젊고 빛나는 순간을 목격했다. 이것이 정말 진정한 청춘이 아니라면 무엇이 청춘이란 말인가!
이래서 나는 여행이 참 좋다. 세상을 탐험하고 세상을 발견한다. 편견 속에 갇혀 있던 나의 정의들을 재정립한다. 이런 순간을 선물해주는 여행이 참 좋다. 설렘을 잠깐 잊고 살았던 나는 오늘 한 노부부의 여행 속에서 청춘을 찾았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을 계속 청춘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도 같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꿈을, 내일은 그 내일을 위한 꿈을 꿀 거다. 그렇게 매일 설레는 하루를 보낼 거다.
그러다 보면 나는 내 인생에서 젊은 시기, 즉 청춘을 매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진시황이 쓸데없이 불로초를 찾을 게 아니라 아이슬란드에 한번 와봤어야 했는데. 이 말도 안 되는 풍경들을 보며 여행의 참맛을 깨닫고, 여행이 가져다주는 그 설렘을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렇다면 늙지 않았을 텐데…!
(응, 뻘소리 그만!)
그러니까, 우리 조금 젊게 살자. 내 청춘 어디 갔냐며 후회하지 말고, 지나간 내 청춘 그립다며 한탄하지 말고.
내일에 설레는 당신이라면, 당신은 아직 인생의 한창때를 살고 있으니 걱정 말자.
당신에게 꿈꿀 내일이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있다면 그대는 아직 청춘이다.
오늘 아이슬란드에서 찾은 청춘의 재발견에 대한 글은 아이슬란드에서 찾은 빙하 온 더 락의 참맛을 증명하는 보너스 사진과 함께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