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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19. 2020

아무 생각 없이 올려다본 하늘엔 오로라가 있었다.

드디어, 오로라!

넷째 날 아침 맞이했던 말도 안 되는 숙소 앞 풍경



아이슬란드에서 맞이한 다섯 번째 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배경이 되었다는 세이디스피요르드로 향했다. 월터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그 언덕이 바로 세이디스피요르드에 가는 길목에 있는데, 영화 속 풍경과 달리 눈으로 새하얗게 덮인 언덕을 볼 수 있었다.



세이디스피요르드로 가는 길



역시나, 오늘도 아이슬란드는 말도 안 되는 풍경을 보여준다. 오늘은 날씨도 유난히 맑아 투명하고 청량한 느낌의 아이슬란드를 만날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12일 내내 다른 모습의 아이슬란드를 경험했는데, 이날은 여러모로 더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세이디스피요르드가 시작되는 길목




오늘 날이 좋아 정말 다행이다. 덕분에 이 마을이 얼마나 예쁜지 더 만끽할 수 있었다. 이 마을은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인데, 색색깔의 페인트로 칠해진 집들을 멀리서 보면 미니어처를 보는 것 같다. 어딜 찍어도 다 그림같이 예쁜 마을.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도 예뻐서 신이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보니 오늘도 빠짐없이 드는 생각,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매일 보는 풍경이 이런 풍경이라니!'.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며 살까? 고민이라는 것이 있긴 할까? 곧바로 '사람이라면 고민이 없을 수 없지'라는 자문자답을 하며 마을에서 나왔다. 




마을의 유명한 포토존인 한 교회


아기자기한 마을





달, 달, 둥근달



숙소로 돌아와 배불리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가기 전, 하늘에 달이 참 예쁘게 떴길래 카메라를 꺼냈다. 얼른 샤워를 하고 나와 달 사진을 더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동안 마주한 경이로운 풍경들을 다시 되새기며 오늘의 피로를 녹여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처음으로 찍은 오로라 사진



그새 달은 사라졌고, 별 사진이나 찍자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까만 밤하늘에 가져다 댔다. 어, 그런데 잠깐. 이상한 게 모니터에 보이기 시작했다. 어? 당시 동행했던 여행 메이트들을 모두 불러 모아 이게 뭔 거 같냐고 물어봤다. 그때 누군가 '이게 오로라인가?'라며 입을 열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나의 카메라 모니터 안에서 오로라를 발견할 것이라고는. 심지어 눈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에 찍힌 한줄기 푸른빛을 보고, '설마 이게 오로라인가?'싶을 정도였다. 밤하늘이나 찍으려고 꺼내 든 카메라에 운 좋게 오로라가 잡혔다. 다급하게 숙소의 불을 모두 끄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숙소 지붕과 오로라




숙소가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집이라 다행이었다. 우리 숙소의 불을 끄니 온 주변이 캄캄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푸른빛의 오로라가 확연히 보였다. 이제는 두 눈으로도 오로라의 꼬리를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보였다. 




우리의 핫도그 푸드트럭 겸 렌터카와 오로라도 한 컷



와, 진짜 보는구나 오로라.
이렇게 보는구나 오로라를.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는 오로라를 못 볼 줄 알았다. 유난히 오로라 지수가 낮기도 하고, 봄으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라 오로라를 보기 힘든 축에 속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맞이하는 모든 풍경이 감동이라 오로라까지 본다면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었다. 오로라를 못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이슬란드를 또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니까 오히려 못 보는 게 더 좋은 걸 수도 있단 망언도 했다.






타임랩스로 오로라를 담기 위해 세워둔 카메라




웃기고 있네, 이걸 왜 안 봐. 이 좋은 걸!



진짜 못 봤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지. 막상 두 눈으로 오로라를 보고 나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왕창 깨달았다. 그래,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온 건데, 오로라를 못 보면 안 되지!


오로라는 아이슬란드 여행에 슬슬 지칠 참이던 우리를 위로하듯 꽤 오랫동안 하늘에 머물렀다. 한줄기 빛이 되었다가 비단 폭처럼 온 하늘을 감싸기도 했다. 그러다 일렁이며 춤을 추기도 하고, 우리가 쳐다보는 매 순간 참 다양한 모습으로 '내가 오로라다'라는 아우라를 펼쳤다. 


왜 사람들은 오로라를 보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드는 걸까?

교통이 편하지도 않고, 물가는 비싸서 하루에 한 끼는 핫도그로 때우는데. 3월에도 폭설과 눈바람에 운전대를 잡기가 힘들고, 링로드를 따라 여행을 하려면 매일매일 숙소를 바꿔가며 예약하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해야 하는데. 오로라가 뭐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밤마다 오로라를 찾기 위해 컴컴한 밤길을 달리는 걸까.







오로라니까. 오로라라서.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새파란 하늘보다는 적당히 구름이 껴 개구진 모습을 한 하늘을 좋아한다. 하루의 하늘 중에서는 석양이 지는 핑크빛 하늘을 선호한다. 하늘을 참 많이 봤는데, 내가 지금까지 본 하늘 중 최고는 보라카이에서 봤던 석양 지던 하늘, 아 아니다. 사하라에서 보았던 은하수가 쏟아지던 그 밤하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로라는 내가 알고 있던 하늘의 정의를 뒤엎을 정도였다. 


하늘을 형언할 수 없는 푸른빛이 감싸고, 그 푸른빛이 하늘인지 컴컴한 게 하늘인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정의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말로 못할 감격과 벅참이 온몸을 감쌌다. 세상이 또 한 번 엎어졌다. 사하라에서 별로 뒤덮인 밤하늘을 보고도 감격스러웠는데, 이번엔 또 다른 느낌의 감격이다. 올해에만 감격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황홀했다.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춤추는 오로라는 정말 황홀했다. 이런 게 자연의 신비인가.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짐을 또 한 번 느꼈고, 동시의 자연의 위화감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 속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게 새삼 감사했다. 


그동안 꽤 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려웠던 순간들을 버텨낸 상을 받은 것 같았다. 버텨내지 못했더라면 평생 보지 못했을 풍경이었겠지. 유난히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 문턱을 넘은 내가 새삼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처럼 쉽지 않게 또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오로라를 발견한 사람들은 각자의 감상에 빠져 밤하늘을 바라본다. 나처럼 지난날을 회상하며 코를 훌쩍이며 오로라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오로라가 생기는 원리를 궁금해하며 물리적? 과학적? 뭐 어쨌건 그런 접근으로 오로라를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 어쩌면 오로라를 본 그 순간 사람들은 앞으로 살아갈 나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지도 모르고, 오로라는 그 나날을 위한 원동력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찰나의 순간을 위해 사람들은 눈보라를 헤치고 몇 시간을 달려온다. 


그렇게 오로라를 올려다보며 내가 나를 위로함이 절정에 다다를 때쯤 오로라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사진이 없었더라면 오로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하늘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그날, 오로라는 자취를 감췄다.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가 생겼다. 일 년에 하나쯤은 멋진 자연을 보러 가야지.

그렇다면 적어도 그 해는 그 멋진 자연을 보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남지 않을까.







평생 못 잊을 오로라를 카메라에 참 많이도 담았다. 아마 금방 놓칠 것이 아쉬워 열심히도 찍어댔나 보다. 그때 찍은 오로라 사진을 혼자만 간직하기 아쉬워 이곳에 풀어본다.


여행 따위 꿈도 못 꾸는 요즘, 이 사진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대리 만족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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