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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3. 2019

밤이 되었습니다, 별님은 고개를 드세요

이게 혹시 말로만 듣던 <갤럭시 익스프레스>입니까?

*사하라 밤하늘에 대한 표현이 과장 같다고 느껴지는 분들은 오늘 당장 모로코행 비행기 티켓을 끊으시길 추천합니다.


정신수양을 마치고 모래 언덕에서 내려와 모로코식 저녁을 먹었다. 어느새 하늘은 캄캄해지고 별들이 빼꼼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모하메드와 사이드는 베이스캠프 한편에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 모든 사람이 모닥불 주위를 둘러싸고 앉았고, 우리의 모로코 친구들은 어디선가 젬베를 들고 나타났다. ‘둥둥둥’ 북을 울리기 시작했다. 모하메드는 모로코 전통 음악을 노래했다. 우리는 어딘가 오묘하면서도 신나는 리듬에 푹 빠져 그들의 공연을 감상했다. 




그렇게 캠프파이어 시간을 마치고, 피워놓은 모닥불마저 점점 불씨를 잃어갔다. 불빛이 사그라진다는 것은 곧 별 하늘을 감상할 시간이 되었다는 것. 자연스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난번 버스에서 본 밤하늘과 (당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차원이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불빛이 하나도 없는 캄캄한 사막에 밤이 찾아오면 까만 하늘에 하얀 별들이 얼굴 위로 쏟아진다고 하더라. 모로코 들판에 자유롭게 풀어놓은 양 떼처럼 누가 하늘에 별을 그냥 풀어놨다. 아니면 한가득 안고 가다 엎질러버렸나. 말로만 듣던 은하수도 마구마구 하늘에 흩뿌려져 있었다. 고개만 들면 저건 무슨 자리, 무슨 자리. 별자리 투성이었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은 더 반짝였다.





지금까지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우주여행을 하는 느낌도 들었다. 별들이 하늘 가득 촘촘하게 박혀 별빛이 길을 반짝반짝 밝혀주고 있었다. 이 벅찬 경험을 어떻게 글로 풀어야 할지 썼다 지웠다 참 많이 반복했는데, 글로도 말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어휘력을 더 길러와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갤럭시 익스프레스, 우주로 가는 급행열차의 첫 정거장이 사하라 사막에 있다 해도 믿을 정도였다. 



사하라 사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한 명도 빼지 않고 극찬하던 사하라의 밤하늘. 그 아래에서는 근심, 걱정 아무것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의 머릿속, 눈 속, 그리고 마음속이 온통 별빛으로 가득 찼다. 낮에 모래 언덕에서 자아성찰을 열심히 하고 왔는데, 그것을 다 아는 것처럼 별들이 정화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성을 했으니 이제 씻겨 보내야지’하고 혹시 별님이 말하진 않았던가요?




사하라 사막에서의 하룻밤, 나는 하루 동안 평생 잊지 못할 벅찬 기억들이 생겼다. 감히 내가 새로 태어났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제 사하라의 밤하늘을 평생 찬양하는 모로코 여행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사막을 베개 삼아, 은하수를 이불 삼아 잠든 밤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이번 생에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27년이 때로는 버겁기도 했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들이 막막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이런 장면을 보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밤하늘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도 몰랐고, 내가 자연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줄도 몰랐는데 나 생각보다 자연 좋아하네. 


'너는 이런 사람 같아', '너는 저거 좋아하잖아', '이런 선택을 하다니 너답지 않은걸?' 다른 사람이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나를 정의했고, 남들이 정해놓은 수식어로 나를 설명했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밤하늘에 이렇게 감격하는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생각한 내 모습 중에 들어있을까? 어쩌면 나는 나를 하나도 모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이제 막 새로운 감각을 배워가는 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하라에서 돌아와 하나의 새로운 결심을 했다. 이번 여행 동안 나를 조금 더 알아가기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떻게 다뤄주어야 하는지 내가 제일 잘 알아야 하니까 내가 나를 좀 더 알아가 보기로 했다. 그 누구의 시선도, 내가 소속된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낯선 땅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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