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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7. 2019

메르주가의 셀럽, ‘알리’씨를 소개합니다

알리네 민박의 사연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알리네 민박으로 돌아와 몸을 녹였다. 우리는 알리네 민박에서 주관하는 지프 투어도 참여하기로 했다. 지프 투어는 호텔 주인장 ‘알리’씨의 가이드 아래 SUV 차량으로 사막을 한 바퀴 돌면서 사막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다.






호텔 앞마당에 준비되어 있는 차에 올라 다시 사막으로 향했다. 오늘 가는 곳은 어제 갔던 사막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었다. 실제 베르베르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도 지나고, 사막여우도 안아보고, 사파리 같은 초원을 달리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말라가고 있지만)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오아시스도 보았고, 말로만 듣던 신기루도 직접 경험했다. 이 날 사막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좋았지만, 오늘 나는 ‘알리’씨와 나누었던 이야기에 집중해 이 글을 써내려 가고 싶다.









지프 투어를 하며 유목민들의 마을을 지날 때엔, 베르베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알리 씨는 미리 준비해온 과자를 우리에게 건네주며 그 아이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그 과자를 건네받은 아이들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어색하지만 밝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때 나는 아이들을 위해 과자까지 챙겨 온 그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아이들을 지나 넓은 평원에 차를 세웠다. 알리 씨는 여기에 인생샷 명소가 있다며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다. 그냥 찍어주는 게 아니었다. 그는 바닥에 직접 드러누워 우리를 찍어주었다. 옷이 흙먼지로 더러워져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함께 즐거워하며 같이 장난치고 웃으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드넓은 평원을 달리다 화석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멈춰 섰다. 존재만으로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화석들은 바위와 돌에 마구 파묻혀있는데, 수가 얼마나 많은지 알리 씨도 이 화석을 캐다 팔아 지금 호텔의 첫 기반을 잡았다고 한다. 그게 우리가 처음 만난 그의 오래전 이야기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사막에서 보는 마지막 ‘일몰’. 다행히 이번엔 차와 함께 높은 언덕을 올라갔다. 다들 차에서 내려 각자의 방법으로 일몰을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알리 씨와 나란히 서서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알리 씨는 우리에게 모로코에서 보낸 시간들이 어땠는지에 대해 물었고, 우리는 우리의 예상보다 더 친절하고 아름다웠던 모로코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알리 씨는 모로코의 원주민인 ‘베르베르’족 출신이었다.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베르베르족. 아랍인들이 넘어와 갈 곳을 잃은 대부분의 베르베르족은 유목민으로 살아간다. 그 또한 아주 어린 나이부터 화석을 캐다 팔며 경제생활을 이어갔던 유목민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어렵게 모은 자금으로 호텔을 열었다. 지금은 2층짜리에 방도 많은 어엿한 (심지어 그 근방에서 가장 큰)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이지만, 처음엔 방 두 칸짜리 건물로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이 호텔이 어떻게 한국인 여행객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게 된 건지 궁금했다. 지금은 숙소에 온통 한국인뿐이라 정말 ‘알리네 민박’이라 불릴 정도인데, (게다가 알리네 민박은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도 수차례 전파를 탔다.) 애초에 어떻게 시작된 걸까? 알리 씨는 웃으며 알리네 민박의 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럽 손님들이 많았고, 동양 쪽에선 일본인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하루는 일본인 손님이 한국인 일행과 함께 묵었고, 그 한국인 손님은 본인의 블로그에 친절했던 알리네 민박의 풍경을 적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게 시초냐고? 그건 또 아니다.


그날도 알리 씨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어느 한국인 여행객의 전화를 받기 전까진. 그 여행객은 사막 투어를 해준다는 모로코의 다른 업체에 사기를 당해 사막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모로코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알리 씨의 호텔 정보가 적혀있는 블로그 글을 발견하게 된다.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일단 알리 씨에게 SOS를 청한다.


알리 씨는 그 여행객에게 다른 업체를 대신해 연신 사과를 하고, 모로코에서의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직접 가이드를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다행히 그 여행객은 알리 씨의 친절에 모로코에 대한 불신을 조금 덜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알리 씨는 여행객을 상대로 사기를 친 같은 나라 사람들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 후에도 그 여행객이 걱정된 알리 씨는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그 여행객이 모로코에서 겪은 일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사과를 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여행객은 유럽 여행의 메카 ‘유랑’ 카페에 알리네 민박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되었고, 그것이 알리네 민박의 시초이다.





알리 씨는 '내가 알리요'라고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스탭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고, 이름이 뭐냐고 묻자 그제야 그는 알리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여기 사장인 거냐고 (우리는 ‘boss’라는 단어로 지칭했다) 물어보니, 에이 그런 게 어딨냐며 모두 다 같이 일을 하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보기 쉽지 않은 풍경이었다.


본인의 친절했던 과거가 현재의 본인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알리네 민박을 들리는 여행객들에게 진심으로 전해진다. 이게 바로 알리네 민박이 성황 하는 이유였다.


생각 없이 건넨 나의 손길이 엄청난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올 때가 있다. 주먹만 했던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엄청나게 커져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에게 대가 없이 베풀었던 알리 씨의 호의가 지금의 알리네 민박을 만들었다. 나는 그때의 알리 씨처럼 그렇게 친절을 베풀 수 있을까? 그렇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군가 알리 씨에게 '지금 친절을 베풀면 나중에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하고 알려주지도 않았을 텐데. 나도 알리씨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정말 내가 하고 싶어서 베푸는 친절이 몸에 밴 사람. 그런 사람이 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려나.


알리 씨뿐만 아니라 알리네 민박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이 친절했다. 그 덕에 우리도 알리네 민박에 묵었던 5일 동안 정말 부족함 없이 편하게 지내다 올 수 있었다. 분명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모로코에 있는데, 삼촌네 집에 놀러 온 느낌이 들었다. 모로코에서 삼촌이 생겨버렸다.


메르주가에 가기 위해서는 10시간 이상의 버스를 타야 하고, 돌아올 때는 굽이진 비포장 도로를 꼬불꼬불 돌아가야 해 메르주가에 다시 가려면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단지 사람 때문에' 그 모든 고난을 헤치고 알리네 민박에 묵으러 다시 가고 싶기까지 하다. 모로코에서 만난 인연 중 가장 감사하고 평생 기억하고 싶은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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