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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0. 2019

정신수양은 사막에서 하세요

사하라 사막에서의 반성의 시간

슬슬 해가 질 시간이 되고, 우리는 사이드와 모하메드를 따라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가장 높은 모래 언덕을 올라갔다. 석양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 하필 나는 엄청난 일교차에 몸살감기를 걸려 몸 상태가 난조였는데, 모래 언덕을 올라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리는 모래에 푹푹 빠지고, 건조한 사막 공기에 숨은 턱턱 막히고. 언덕은 꽤나 가파르고 높았는데, 정말 거의 네 발이 되어 기어갔다. 중간중간 이걸 정말 올라가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다른 일행들은 지친 내색 없이 신난 얼굴을 하고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생각보다 추운 사막 날씨에 옷도 여러 겹 껴입어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무거웠던 나는 걷다 쉬다를 반복했다. 확 안 좋아진 컨디션에 어제까지만 해도 알록달록 예쁘던 모로코 전통의상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라는 생각에 이를 꽉 깨물고 겨우겨우 정상까지 올라갔다. 이미 먼저 도착한 이들은 정상의 풍경을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다.




일단 허리를 펴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올라왔는데, 올라온 보람이 있었다. 아니, 너무 말도 안 되는 풍경에 고작 언덕 하나에 힘들어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내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모래언덕. 문명 속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없는 자연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예전에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가본 적이 있다. 그때 생애 처음으로 자연의 위대함을 느꼈는데, 지금은 위대함을 넘어 경이로웠다. 왜 사람들이 사막을 가보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모래에 철퍼덕 앉아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석양에 물들어 주황빛으로 빛나는 모래들. 아무리 저 앞을 보려고 노력해도 사막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어 졌다.





아무것도 없는 이 사막에서도 동물들, 식물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살아간다. 혹시 나는 풍요 속에서 빈곤을 느끼며 살진 않았을까? 내게 주어진 것들에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했던가. ‘사회 탓, 환경 탓, 그래서 어쩔 수 없어’ 합리화해가며 타협하는 삶을 살진 않았나. 퇴사를 하고 이직 준비를 하던 중 때아닌 ‘자아 찾기’를 위해 굳이 굳이 이 멀리 유럽까지 와서 내 이야기를 찾겠다는 그 열정도 아직까지 남아 있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갔다.


당장 몸이 힘들다고 언덕 오르는 것에도 힘들어 모래 언덕을 속으로 얼마나 욕했는데, 올라오자마자 또 간사하게 바로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는 꼴이라니. 사막을 바라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새해도 되었겠다, 사막에도 왔겠다 조금은 유치할 수 있지만 새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기로 했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자.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보자. 몸 좀 편하려고 타협하지 말고. 부족함은 곧 상대적인 것이다. 이 또한 다른 이에겐 풍요일 수 있다는 것을 계속 되뇌어보자. 


정신 수양은 아무래도 사막에서 해야 하나 보다. 오늘 또 한 발짝 성장한 나와 함께 사막을 내려갔다. 아, 그리고 사막을 내려가는 것은 올라오던 것보다 천배는 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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