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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9. 2020

조금 덜 동요하고, 조금 더 잔잔해지자.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이제 안녕.

부모님과 떨어져 산 것이 어언 12년째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 직장을 다닌 후에는 집이 멀어 자취를 했다. 스무 살이 된 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산 것은 합쳐도 1년이 채 안된다.


타지 생활을 꽤 오래 혼자 하다 보니 눈치가 빠삭하다. 원래 예민한 탓도 있겠지만, 공기의 흐름이 변하는 것에 참 민감하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그 미묘한 감정 변화에도 예민하다.


예민의 초절정을 달리던 사춘기 때에는 그 미묘한 변화 하나하나에 반응했다. 지나치질 못했고, 원인을 파악해야만 했다. 물론 나의 '촉'이 맞아떨어진 때도 있긴 했다만, 상대방이 피곤해 퉁명스러운 말투를 보일 때면 그 이유가 '내가 싫어서'라고 생각했다. 참 꼬아서 생각했고, 내가 나를 비난했다. 그래서 많이 피곤했다.



나의 소중한 감정을 함부로 소모하지 말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니 내 감정이 버틸 수 없었다. 매 순간이 감정노동이었다. 상대방의 눈빛 하나에 울고 웃었다. 내 소중한 시간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의 감정 동요에 휩싸이며 흘러갔다. 그렇게 지나간 나의 이십 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간이 조금 더 많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주인공의 감정에 지나치게 이입해 울다 웃다를 반복한다. 거기다 내 주변인들의 감정에까지 이입하니 내 감정을 돌 볼 시간이 없었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와 상관없는 일들에 감정을 소모하다 보니, 나를 위해 남는 감정이 없었다. 내 감정인데 나를 위해 쓸 게 없다니.



조금 덜 동요하고, 조금 더 잔잔해지자.



나를 싫어하는 한 명이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대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다고 해서 동요할 필요가 없다. 괜히 그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잘 보이려고 애쓰다 보면, 내 인생을 그 사람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 그렇게 내 감정이 상대방의 감정 변화에 휩쓸린다. 이게 바로 쓸데없는 감정 소모다.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지 말자.'

싫어하는 사람의 감정을 되돌리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한번 더 만나는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고민거리가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 사람을 알아가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로 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감정과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 제일 첫 번째는 내가 되기로 했다.


내가 먼저가 되니 다른 사람의 눈짓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감정이 줄어들었다. 나만의 기준이 생기니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짓을 그만두니 덜 피곤해졌다. 그러다 보니 담담해졌다. 내 인생을 신경 쓰느라 바빠지니 다른 사람의 감정 변화에도 '그러려니' 싶어 졌다. '내가 싫어서 그런가?' 하는 의문도 사라졌다.


조금씩 무뎌지는 법도 배웠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뻔뻔함도 생겼고,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만 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꼭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란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없다고들 한다. 친구, 가족, 연인, 동료 등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이 관계들은 각자의 목적도 너무나 뚜렷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꽤나 어렵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내가 건강해야 모든 관계가 잘 돌아갈 수 있다.


내 감정을 내가 잘 알고 다스릴 수 있는 것, 그것 건강한 나를 만드는 첫번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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