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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Apr 06. 2020

습관성 스펙 쌓기,  완벽한 YOLO를 위한 플랜B

YOLO도 플랜B와 함께하세요.


나 욜로 할 거야, 퇴사한다!


바야흐로 2년 전인 2018년 3월 1일부로 나는 공식 백수가 되었다. 그때 한창 유행이던 'Y.O.L.O. (You Only Live Once)', '욜로, 즉 한번 사는 인생 열심히 제멋대로 살아보자' 열풍에 귀가 아주 펄럭였기 때문에. 그렇게 퇴사를 하고 주섬주섬 짐을 싸서 연고도 없는 체코 프라하에서 무모하게 반년 살기를 했다. 그때부터 약 8개월간 유럽, 아프리카 이곳저곳을 많이도 돌아다녔다. 1월에는 사막을, 3월에는 빙하를, 5월에는 바닷속을 누비면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취준생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한 지 3개월 만에 지금의 회사를 만났다.





내일이 없는 것 같더니, 생각보다 금방 취직했네?


취직하고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하나 더, '생각보다 욜로 할만한가 보다? 금방 다시 취직하네~'. 진짜 무모한 생각이다. 물론 퇴사하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긴 했다. 하지만 마냥 놀지만은 않았다. 욜로를 꿈꾸며 자유인이 되었지만, 나는 습관성 스펙 쌓기를 했다. 금방 취업이 된 이유는 그 탓이다. 오늘 다시 월급쟁이가 된 지 6개월이 된 기념으로 나의 욜로 뒷이야기를 털어볼까 한다.







2년 전 평소와 다름없던 출근길에 문득 내가 타고 가던 버스가 사고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내가 감당 못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물론 그런 상상 속에서도 원만한 보험 처리를 위해 안전벨트는 꼭 맸다. (모순 쟁이) 그런 생각이 아주 가끔, 그러다가 일주일에 몇 번, 꽤 자주 들기 시작했다. 다 그런 줄 알았다. 누구에게나 출근길은 쉽지 않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직장 선배가 '출근길에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땐 진짜 퇴사해야 하는 거래.' 라며 툭 던진 말에 나는 심장이 툭 떨어졌다. 그리고 머리는 멍해졌다. '아, 이거 가벼운 게 아니구나.' 그날 나는 바로 인생 첫 사직서를 제출했고, 퇴사 처리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모두의 축하와 위로 속에 전 회사를 나왔다.





처음엔 곧바로 이직을 할 생각이었는데, 내가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시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PR이라는 일도 피부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PR이라는 광범위한 일 속에서 나는 '콘텐츠'를 좋아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던 일, 그게 콘텐츠였다. 그래서 이다음 직업은 조금 더 콘텐츠에 집중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즈음 내 마음속 욜로가 점점 몸집을 키웠다. '나이 제한에 걸리기 전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워킹 홀리데이를 가야 후회가 없을 거다'라는 욜로의 외침을 듣고 체코로 떠났다. 여기서 주의할 것, 나는 욜로의 외침만 듣지는 않았다.


내 마음속에는 세미(semi) 프라임 격의 세포가 하나 있다. 바로 염려 세포. 보통 욜로가 저지르는 일을 뒤에서 수습하는 역할을 하는 이 세포는 욜로의 결단 뒤 '이래도 되나?'를 고민한다. 당시 나의 염려 세포는 '나, 체코로 간다.'는 욜로의 결정 소식을 듣자마자 백업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다.


2018년은 마이크로 인플루언서, 개인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터닝포인트가 된 시기다. 당시 정말 많은 여행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었고, 여행 관련 인플루언서가 다양한 산업군의 러브콜을 받았다. 나는 앞으로 콘텐츠를 할 사람이니, 여행을 통해 내 콘텐츠로 콘텐츠 연습을 하면 욜로도 생산적인 욜로가 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나의 염려 세포가.





여행하면서 콘텐츠 공부했어요.


여행 시작과 동시에 나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열었고, 그동안 잘 안 썼던 디자인부터 사진, 영상 촬영, 편집 스킬을 오랜만에 발휘했다. 내 콘텐츠의 좋은 점은 내 맘대로, 내 취향대로 해도 된다는 것! 그러니 반응이 미비하더라도 재밌어서 한동안 영상을 열심히 올렸다. 그러다 보니 구독자 수도 꽤 늘었고, 슬슬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콘텐츠를 통해 유튜브 채널 운영법을 체득했다. 더 효과적인 콘텐츠를 찾기 위해 A/B 테스트도 해보고. 자연스레 유튜브 공부를 한 거다.


글도 열심히 썼다. 한국을 떠나며 브런치를 처음 열었는데, 운이 좋게 바로 작가 신청이 수락되었다. 덕분에 프라하 한인 민박 스태프의 생존기(?)와 함께 나의 욜로 여행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내 글은 브런치 메인과 다음 메인에 꽤 여러 번 노출이 되어 고스란히 나의 포트폴리오 페이지에 실렸다.





이때 지난 회사에서의 경력이 도움이 되었는데, 메인에 노출이 되면 제일 먼저 캡처를 하고 표시를 해 포트폴리오에 바로 업데이트하는 것. PR회사에서 고객사 또는 경쟁사 모니터링을 할 때 하던 일인데, 내 콘텐츠를 모니터링하니 참 뿌듯했다.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모니터링을 할 생각도 못했을 텐데! 또 어떤 글이 메인에 노출이 되고, 어떤 글이 잘 안되는지 보면서 브런치에서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아, 관종이 낳은 뜻밖의 채널 분석! 이렇게 나는 또 '브런치'라는 채널을 공부했다.



습관성 스펙 쌓기, 욜로를 위한 플랜B



욜로 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나는 스펙을 쌓았다. 나의 다음 행보를 위해 미리 고민하고, 그 행보를 위한 포트폴리오에 내 욜로를 이용했다. 유튜브와 브런치, 영상과 글, 각자 다른 형식의 콘텐츠 플랫폼 중 상위 채널을 직접 운영해보며 콘텐츠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넓혔다. 여행지 이동 시간에는 퍼블리와 브런치에서 콘텐츠에 관련한 글을 읽으며 콘텐츠와 관련한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었다. 욜로 하긴 했지만, 콘텐츠는 계속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펙을 쌓느라 못 즐긴 것도 아니다. 욜로에도 아주 열심히 집중했다. 놀 땐 아주 신명 나게 놀아제꼈다. 다만, 어차피 남는 자투리 시간을 사용했다. 자투리 시간에 내 포트폴리오가 쌓여가니 괜히 안심이 되었고, 나는 여행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여행에서 정말 진심으로 느끼고 즐겨야 많은 사람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콘텐츠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욜로와 플랜B의 선순환이 생겼다.


결국 이렇게 쌓인 나의 플랜B는 나의 든든한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콘텐츠 채널 운영 경험,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 실제 콘텐츠 기획 및 제작 능력까지 한 번에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 그런 스킬을 갖춘 사람이 필요했던 지금의 회사를 만났다.


만약 내가 유튜브나 브런치 콘텐츠로 나의 공백기를 기록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렇게 빨리 새로운 회사를 만나지 못했을 거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의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야 하는 게 콘텐츠 산업인데, 콘텐츠를 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에게 1년이 넘는 공백은 타격이 크다. 아무리 여기저기서 읽고 공부해도 직접 채널 운영이나 콘텐츠 제작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괜히 불안했을 거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볼 방법이 없으니까.





퇴사 후 욜로의 삶을 찐하게 살다 또 금세 취직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꽤 많은 나의 주변인이 동요했다. 그리고 그중 심각하게 나와 같은 욜로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퇴사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욜로? 좋지. 다만, 욜로도 플랜B가 있을 때 멋있는 욜로가 되는 거다.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생각보다 골로 가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니 정말 나는 욜로를 하기 위해 퇴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평생 기분 좋게 기억에 남을 욜로를 위해 플랜B는 조금 더 꼼꼼하게 세우라는 조언을 감히 하고 싶다.


나도 플랜B가 있었기에 욜로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고, 플랜B가 있었기에 그때 욜로를 선택했던 나를 후회하지 않는다. 플랜B가 없었더라면 나는 내 소중한 휴식 시간, 그리고 나 자신까지 모두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플랜B를 세워준 나의 염려 세포에게 참 고맙다.






플랜B가 있으면 뭣이 욜론디?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다'라는 욜로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보면 어떨까? 인생은 한 번뿐이니 즐겨야지. 하지만 인생은 한 번뿐이니 되돌릴 수도 없다. 즐길건 즐기되, 후회하지 말자. 후회라는 감정은 나의 즐거움을 좀먹는 아주 속상한 감정이니까.


나의 진심 어린 이 글이 욜로를 꿈꾸는 당신에게 새로운 플랜B를 세워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본다. 플랜B와 함께했던 나의 욜로는 정말이지 아주 멋있던 나날들이었으니까. 당신도 꼭 그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feat. PLA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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