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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16. 2020

코로나와 함께 하는 봄이란

내가 생각했던 봄은 이런 봄이 아니었는데.

코로나로 온 세상이 난리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Pandemic) 선언으로 더욱더.

*팬데믹: 세계보건기구(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하필 한 해를 시작하는 희망찬 시기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설날, 온 식구들이 모여 할머니께 세배를 드리던 그때 할머니의 뒤에 있던 TV에서 '우한 폐렴'을 다루는 뉴스가 나왔다. 중국 '우한'이라는 도시가 폐렴 때문에 비상이라는 내용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중국에 우한이라는 도시가 있는지 처음 알았고, 우한 폐렴은 남일인 줄 알았다.


우한 폐렴은 곧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라는 어마 무시한 이름이 생겼다. 글로벌 명칭은 COVID-19, 우리나라에서는 코로나19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사스와 신종플루, 그리고 메르스도 경험한 세대인데 왜인지 코로나는 피부로 다가왔다. 사스는 중국에서나 크게 유행했다 치고, 우리나라에 신종플루가 한창이던 2009년엔 중국에 있었고, 메르스로 난리였던 2015년엔 미국에 있었다. 어쩌다 보니 빗겨나간 셈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렇게 피부로 와 닿는 전염병은 코로나가 처음이다.





2020년, 나는 스물아홉이 되었다. 스물이 되기 전 그 설레던 마음을 기억하는가? 서른이 되기 전 설레기도 하고 무언가 싱숭생숭한 이 마음도 누구나 공감하리라. 물론 한국 나이 시스템을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기분은 묘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계획을 많이 세웠다. '나의 이십 대가 끝나기 전 무엇은 꼭 해보고 말겠다' 하는 다짐과 같은 것들을.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몰래 온 손님, 코로나 너란 녀석



코로나가 올 것이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해가 바뀌고 연초에만 느낄 수 있는 그 설렘들을 코로나가 사뿐히 즈려밟았다. 친척 동생들의 졸업식과 입학식은 물론이거니와, 친한 후배의 결혼식도 미루어졌다. 여행 중독자인 나의 여행 계획도 무제한 연기. 일생에 한 번뿐인 대소사를 포함한 사람들의 모든 일상이 코로나에게 휘둘리는 사태가 발발했다.





2020년의 시작을 이런 무자비한 질병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치사율이 높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높은 질병이다 보니 사람들의 신뢰는 좀먹어간다. 마스크를 안 낀 사람을 곁눈질하고, 헛기침을 하는 사람은 죄인이라도 된 것 마냥 고개를 푹 숙인다. 집에만 있기가 답답해 바깥 외출을 하면 사람들 눈치가 그렇게 보인다. 요즘의 인기 해시태그는 사회적 거리두기다.


올해는 어디가 제일 먼저 벚꽃이 폈다며 언제쯤 만개할 테니 꽃놀이는 이번 주말에 하시라는 내용이 가득해야 할 뉴스는 하루 종일 코로나 얘기다. 확진자와 사망자, 코로나로 휘청거리는 세계 경제, 이때다 싶어 코로나 가지고 장난치는 정치 얘기까지. 가뜩이나 봄이 안와 우울한데 뉴스는 더 우울한 얘기만 잔뜩이다.





그래도 봄은 왔다. 날씨는 조금 따뜻해졌고 (물론 오늘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해도 길어졌다. 퇴근할 때 깜깜했던 하늘은 어느새 예쁜 석양을 가득 담은 오렌지색과 보라색 그 중간 어디쯤의 색을 품고 있다. 그러니 괜스레 더 우울하다. 이 세상은 아직 봄을 맞이할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데, 코로나고 뭐고 나는 때가 되었으니 왔다는 봄이 눈치 없어 보이기도 한다.



봄은 왔는데 봄을 즐기지 못하니 그것 참 야속하다.



사스와 메르스, 신종플루도 결국 끝을 맺었듯이 코로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끝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문가들 의견도 다 다르다. 누군 4월이랬다가, 누군 7월이랬다가.)

봄은 한 해를 시작하는 새로운 출발의 의미를 가득 담은 계절이다. 새싹이 파릇파릇 자라나고, 새 학년이 시작되는 계절. 그게 바로 봄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봄에 생명유지를 걱정해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일을 우리는 겪고 있다. 그러니 우울한 것도 당연하다. 안 그래도 싱숭생숭한 봄에 코로나의 우울감까지 더해진다. 마음이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가 다 지나가고 나서 맞이하는 계절이 여름이 될지, 혹여 가을이나 겨울이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2020년 봄이 코로나와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견뎌야 한다.


코로나가 주는 무력감과 봄을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 모두가 느끼는 바다. 나 혼자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이건 당신의 인생이 꼬인 탓이 아니라, 정말 표면 그대로 코로나 때문이다. 그러니 견뎌야 한다. 더 보란 듯이 잘 이겨내야 한다. 네까짓 바이러스에 넘어질 사람들이 아니라고. 우리는 아직 맞이해야 할 봄이 있다. 봄이 지나가면, 그다음에 올 계절이 있다. 물론 제때 못 느끼는 봄은 너무 아쉽지만, 나중에라도 맞이하면 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우리는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 최선을 다해 그 계절을 온몸으로 누릴 거다.





잠깐 멈춤이다.

기차가 지나가기 위해 건널목 앞 잠깐 정지해있는 차들처럼, 우리도 잠깐 멈춰있는 거다. 기차가 지나가면 차단기가 다시 올라가듯, 코로나가 지나가면 우리도 다시 움직이면 된다. 그때 더 열심히 움직이면 되지.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코로나에 동화되어 괜히 일에 의욕도 없고,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축 처진 어깨가 걱정되어 잠도 못 이루는 요즘이다. 물론 힘들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말처럼 그렇게 도움이 안 되는 얘기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라도 자꾸 '할 수 있어, 해보자, 좀만 더 버텨보자'라고 얘기하다 보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올해 봄을 조금 늦게 맞이하면 된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가 인생을 힘들게 하는 모든 이들에게

코로나 때문에 생각지 못한 봄을 맞이한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너와 나, 우리 모두에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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