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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Feb 29. 2020

아 진짜, 오늘 아침에도 부지런해지고 싶었어요.

부지런하지 않은 자의 구구절절한 변명 모음.zip

오늘은 아침부터 글러 먹었다.


매일 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다음날 아침을 위한 알람을 맞출 때,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울리게 설정한다. 의미 없는 습관이자 부질없는 행동임을 너무나도 잘 알면서.



날이 밝아오고, 알람이 울린다.

지난밤 알람을 일찍 세팅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는 오늘 아침의 나는 어제저녁의 나와의 약속을 가볍게 배반한다. '어제 좀 일찍 알람을 맞췄으니까 아직은 괜찮아. 5분만 더.' 그렇게 5분이 30분이 되는 매직.


결국 늦게 일어나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고, 화장은 사치, 운동화도 꺾어 신고 엘리베이터로 뛰어간다. 그리고 또 후회를 한다. '아, 오늘 아침에는 진짜 부지런해지려고 했는데.'



올해는 기필코 다이어리를 밀리지 않고 쓰겠다며 작년 11월부터 2020년 다이어리를 샀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그렇게 밀린 다이어리만 벌써 4개째, 즉 4년째. 



학생 때는 책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다이어리에 To-do list를 적어야 공부를 시작했고, 그 날 특별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들도 기록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흑역사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심심할 때 읽어보면 그때의 내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 그 기록의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다이어리는 꾸준히 구매했다.


회사에서 일기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회사에서 적는 To-do list는 학생일 때 내가 적던 일과와 전혀 달랐다. 오늘 할 일은 몽땅 회사 일이었고, 그것을 내 개인적인 다이어리에 끌고 오긴 또 탐탁지 않았다. 그렇게 회사용, 개인용 다이어리가 분리되었다. 회사용 다이어리는 그 날의 업무, 회의 내용, 아이데이션 등으로 빼곡하게 채워졌고, 하도 열었다 닫았다 해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반면 개인용 다이어리는 마치 어제 산 듯 클-린. 


심지어, 지금 회사에서는 노션을 사용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손글씨를 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나는 손으로 필기하는 게 좋다'며 디지털 기록을 흘겨보던 나는 어디에…!?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며, 회사 근처로 자취방을 구했다. 이 회사에서는 야근을 얼마나 할지도 모르니, 한 달 정도 다녀보고 루틴이 생기면 회사 근처에서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직 준비를 하고, 하루에 면접을 두 탕씩 보고 다닐 때도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꼭 운동을 했다.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발생한 일이었고, 그런 내 모습에 조금 심취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프로페셔널하게 식단도 조절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저 기초체력이 아주 살짝 늘어났을 뿐, 겉으로 보기에는 운동을 한 티도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금 회사의 대표님과 최종 면접을 하던 날, '은표 님은 취미가 뭐예요?'라는 대표님의 질문에 '필라테스요! 요즘 꾸준히 필라테스를 하고 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요. :)'라며 해맑게 대답할 정도였다. (입사 후 대표님과의 첫 회식 때 대표님께 요즘은 쉬고 있다고 이실직고했다...ㅠㅠ)


어쨌든, 나와 약속한 (루틴을 파악하기 위한) 한 달, 아니 거의 세 달이 지났다. 그리고 결국 새해가 되어서야 '모든 것이 새롭다는 연초 뽕'을 맞고 회사 앞 필라테스를 등록했다. 처음엔 퇴근하고 종종 가다가, 바쁜 시즌엔 종종 야근을 하다 보니 또 '어쩔 수 없다'는 합리화와 함께 2주 쉬었다. 결국 안 되겠어서 점심시간에 운동을 갔는데, 점심시간 운동을 시작한 지 이틀째, 생각하지도 못했던 복병 코로나19가 나타났다.



새해에는 달라지고 싶었다.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것이 잔뜩 떠오르고, 또 막상 그 미션들을 해치우고 나면 결과물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가져온다. 하지만, 미션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몸이 참 무겁다. 첫 발걸음을 떼면 전속력으로 달려갈 수 있는 체력도, 루트도 머릿속엔 다 있는데, 그 첫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이윽고 2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부지런해지겠다는 2020년이 두 달이 지났다. 서른에는 조금 더 부지런한 사람이 되고 싶어 1년 남은 지금이라도 부랴부랴 습관을 만들겠다는 거였는데, 거참 애매하다. 



지난 두 달, 아니 총 330개월을 뒤돌아 보면, '5분만 더, 조금 이따'가 내 발목을 그렇게 잡았다. 그래, 부지런하지 않아도 좋아. 천성이 게으르다면 낙천적 이기라도 하던가. 아니면 나의 그 게으름으로 발생한 부작용들에 대해 관대해지기라도 하던가. 그건 또 못한다. 게으른 내 모습에 내가 실망을 하고, 부지런하지 못해 놓친 것들에 그렇게 아쉬워한다. 그리고 '진짜 이러지 말자'며 다짐을 한다.


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 이랬던가.
후회가 제일 쉬웠어요.

    



후회만 하는 악순환에 앞으로 남은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은 눈에 보이게 기록을 하기로 했다. 스마트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조금 스마트하게 습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기계의 힘을 아주 살짝 빌리는 것인데, 습관을 기록하는 어플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용한 지 이제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 습관이 생겼다고 말하긴 조금 애매한데, 내가 매일 나와의 약속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체크하는 재미가 있다. 그렇게 무거웠던 첫 발짝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렇게 브런치에도 그 기록을 남겼으니, 한 달 뒤에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다시 나의 습관에 대해 글을 쓸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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