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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Oct 28. 2023

런던 브릿지로 출근합니다.

    아침 7시, 요란한 알람에 힘겹게 잠깐 눈을 뜨고 어찌저찌 알람을 끕니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되는데...'라는 죄책감과 함께 다시 이불속으로 파묻힙니다. 샤워하고 나온 안나가 궁뎅이를 때리며 "일어나 은표~~"라고 하면 그제야 시계를 흘긋 쳐다보고는 무거운 상반신을 일으킵니다. 7시 30분. 씻고 옷 입고 짐 챙기면 20분, 기차역까지 걸어서 15분, 8시 6분 기차를 타기엔 빠듯합니다. '9시 미팅이 있었던가...' 뭐 있었더라도 어쩌겠습니까, 이미 늦을 것을. 맨날천날 기차 고장 나고 파업하는 영국이니 기차 핑계를 되면 될 일입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도시락까지 싸고 더 늦은 기차를 탈까도 생각하다 귀찮아서 관둡니다. 'Meal deal 사 먹지 뭐'.


    8시, 집을 나서기 전 안나랑 아침 포옹을 하고 같이 밖으로 나갑니다. 오늘 날씨는 흐림. 회색의 우중충한 하늘을 보며 '영국했다'고 생각하며 투덜거립니다. '내년에 꼭 영국 뜬다! 제네바로 이사 가야지!'. 늘 생각하는 거지만 기차역까지 거리가 참 가깝다고 하기도 뭐 하고 멀다고 하기도 뭐 합니다. 애매하게 가까운 듯 아닌 듯 한 길을 서로 손을 꼭 잡고 걷습니다. '8시 14분 기차 타면 9시 조금 전에는 회사 도착하겠다' 집에서 역까지 15분, Woking에서 Waterloo까지 30분, East Waterloo에서 London Bridge까지 10분, 런던 브릿지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5분. 집에서 회사까지는 꼭 1시간 정도 걸립니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 어디 위성도시에서 KTX나 SRT를 타고 서울로 출근하는 셈이지요. 안나랑 걸으며 오늘은 무슨 미팅이 있네 누가 휴가 가 있네 같은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기차역에 다다릅니다. 우리나라 미적 기준으로 증말 못 생긴, 유서 깊은 외형의 기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옵니다. 저 오래된 고철 덩어리가 천안에서 서울역 거리를 20분 만에 주파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영국 기차는 대게 지정 좌석이 없습니다. 운이 좋아 빈자리가 있다면 탈 수 있겠지만 대게는 칸 사이에 서서 갑니다. 서서 갈 때면 '회사 가면 종일 앉아 있을 테니 서서 가는 게 좋은 거지 뭐'하고 합리화를 하곤 하지만 역시 피곤한 아침에는 앉아 가는 게 좋습니다. 오늘은 웬일로 두 자리가 나란히 빈 곳이 있습니다. '어이구 재수야'. 좁은 통로를 비집고 들어가 "Sorry"를 연발하며 자리에 앉습니다.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리는 보통 저녁 메뉴 얘기를 합니다. "오늘은 뭐 먹지? 냉장고에 먹어야 될게 뭐가 있더라? 아 우유 떨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사야겠네" 그렇게 음식 얘기 장 볼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워털루에 곧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8시 45분, 워털루 역은 직장인들로 바글바글 합니다. 서울과 눈에 확 띄게 다른 점이 있다면 다들 각양각색으로 생겼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다채로운 옷차림. 보편적 미적 기준과 보편적 유행이 자리 잡혀 있는 한국과 달리 여기는 정말 멋대로입니다. 둘 중 뭐가 더 낫고 더 멋진 건지는 잘 모르습니다. 워털루역에서 안나 회사는 걸어서 15분 거리, 는 다른 기차로 갈아타고 런던 브릿지 역으로 갑니다. 오늘 하루 화이팅하라고 서로 응원해 준 뒤 가벼운 포옹과 뽀뽀를 뒤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합니다. 워털루에서 런던 브릿지 역까지는 2-5분 간격으로 계속 기차가 있습니다. 런던 브릿지로 향하는 기차 안, 시야에 더 샤드 (우리나라로 치면 롯데타워)가 눈에 들어오면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합니다. 회사 출입증을 목에 걸고 가방을 둘러매고 기차에서 내려 타워 브릿지가 있는 방향으로 걷자면 가는 길에 테스코가 보입니다. 점심시간이면 미어터지기에 오늘도 출근길에 테스코에 들립니다. 한가하기도 하고 또 아침이면 갓 구운 빵냄새가 나서 괜시리 기분이 좋습니다. 언제나처럼 점심메뉴는 역시 밀딜. 샌드위치 + 간식 + 음료를 5천 원 남짓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테스코 밀딜은 회사원 통장에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할인카드에 사내 복지 센터에서 산 상품권까지 써주며 알뜰하게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옵니다.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회사가 보입니다. '오늘은 또 무슨 메일들이 와 있으려나'. 출입증을 전자패드에 태그하고 회사로 들어섭니다. 런던 브릿지에서의 하루,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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