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7년간 살며 가본 곳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들었던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몇 주 전에 다녀온 Snowdonia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입니다. 영국을 이루는 4개의 나라 중 하나인 웨일즈. 그 웨일즈에서 자연이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또 가장 높은 산이 있는 곳이 바로 웨일즈의 북쪽에 자리한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입니다.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에 얘기하기 전에 사설로 웨일즈와 영국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자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은 조금 특이한 곳입니다. '영국'은 하나의 국가이지만 동시에 4개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나라'의 차이에 대해 검색하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영국을 이루는 4개의 나라는 다음과 같습니다.
- England (잉글랜드)
- Wales (웨일즈)
- Scotland (스코틀랜드)
- Northern Ireland (노던 아일랜드)
영국에 오기 전, 저는 이 4곳이 각각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그냥 우리나라의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와 같은 좀 더 특색이 짙은 지방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의 할머니와 대화를 하다 스코틀랜드를 별개의 나라로 말씀하시는 걸 듣고 궁금해 검색해 보니 스코틀랜드가 지방이 아니라 별개의 나라라고 나와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서로를 다른 나라로 인지하면서도 또 같은 국가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우리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을 적어보자면,
- England (잉글랜드)
잉글랜드가 곧 영국인 것만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거진 대부분의 주요 도시와 영국인들이 잉글랜드에 살고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 약 85%가량이 잉글랜드에 거주한다고 나오네요. 수도는 런던이며 한국과 비슷하게 인구가 자꾸 수도권으로 몰려들어 런던과 그 주변은 어마무시한 집값과 물가를 자랑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지내고 있는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권에 있는 투룸에 공과금 포함 월세로 약 250만 원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운 좋게 집을 잘 찾아 싸게 지내는 겁니다. 런던 중심에 사는 몇몇 제 친구들은 같은 비용을 내고 4 - 6명이 사는 집의 방 하나를 빌려 삽니다. 대표적인 영국의 나라답게 비가 자주 오고 하늘이 흐린 날이 많습니다. 특히 11월 - 4월은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일 년 중 6개월이 우울하죠.
잉글랜드의 지리가 재미있는 게 대한민국과 체감상 크기가 비슷하며 (요크셔 지방까지만 생각했을 때) 대한민국 지도를 180도 돌리면 주요 도시의 위치나 거리가 꼭 잉글랜드와 비슷합니다. 서울은 런던이고, 맨체스터는 부산, 리버풀은 울산, 셰필드는 포항, 리즈는 대구와 못내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각 지방마다 두드러지는 억양 및 사투리가 있고, 잉글랜드의 북쪽은 좀 거칠지만 정감 있고 (우리나라 경상도처럼) 잉글랜드 남쪽은 좀 거만하지만 교양 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 Wales (웨일즈)
잉글랜드의 왼쪽, 영국의 서쪽을 담당하며 자연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산과 계곡 그리고 폭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웨일즈는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고 웨일즈 사람이라면 지금도 학교에서 웨일즈어를 배우는 게 당연시됩니다. 이번에 여행 갔을 때도 마트에서 웨일즈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 재밌고 또 신기했습니다. 제게 웨일즈는 뭔가 판타지 세계로 치면 엘프들이 사는 곳만 같은 느낌입니다. 부드러우면서 아름답게 들리는 웨일즈어, 늘 밝고 친절하고 긍정적인 성격, 또 웨일즈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노래를 잘 부르기로 유명합니다.
- Scotland (스코틀랜드)
National Geographic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입이 떡 벌어지게 멋진 영국의 자연이 소개된다면 그건 십중팔구 스코틀랜드입니다. 잉글랜드의 북쪽에 위치한 스코틀랜드는 인구 밀도가 매우 낮으며 광활하고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입니다. 웨일즈가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이라면 스코틀랜드는 자연 그 자체 같은 느낌이죠. 그 밖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어를 쓰지만 억양이 아주 독특해 처음 들으면 영국 사람이라도 이해하느라 애를 먹습니다. 스코틀랜드에도 잉글랜드와 맞닿는 남쪽에는 글라스고, 에딘버러와 같은 큰 도시들이 있고 가보지는 못 했지만 친구들이 하나같이 다 아름답고 살기 좋다고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 Northern Ireland (노던 아일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그리고 스코틀랜드가 있는 메인 섬 서쪽에는 또 다른 섬나라 아일랜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일랜드의 북동쪽은 꼭 쥐 파먹은 사과 모양으로 노던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영국에 속 해 있습니다. 상당히 독특한 영어 억양을 가졌다는 것 외에는 사실 제가 노던 아일랜드에 대해 아는 건 없습니다. 다만 영국에게 오래도록 괴롭힘을 당한 아일랜드가 독립운동을 통해 대 부분의 땅은 수복했지만 끝내 북동쪽 한 귀퉁이는 노던 아일랜드라는 이름으로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죠. 장모님이 아일랜드 분이신데 아일랜드의 역사 얘기를 듣자면 꼭 한일 관계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일랜드가 한국, 영국이 일본인 셈이죠. 장모님께서도 오래도록 괴롭힘 당한 한국의 역사가 꼭 아일랜드와 같아 마음이 많이 간다고 말씀하시곤 하십니다.
여담이 길었네요. 여튼 이번에 갔다 온 웨일즈 북쪽에 위치한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은 제가 영국에 살며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이었습니다. 꼭 < 반지의 제왕 >에 나오는 엘프와 드워프 그리고 트롤이 사는 땅이 실제로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의 푸르지만 좀 맹숭맹숭한 동산들만 보다 바위와 계곡이 더해진 자연을 보니 훨씬 더 다채롭고 생기 있어 보였습니다.
꼭 잉글랜드와 한국의 자연이 반반씩 섞여있는 듯한 웨일즈의 자연에 아내와 저는 혹시 나중에 영국으로 돌아와 살게 된다면 잉글랜드가 아닌 웨일즈도 고려해 보자고 말했습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웨일즈에는 잉글랜드 보다도 더 자주 비가 온다는 점... 맑고 화창한 날씨가 몹시 중요한 제게는 아쉬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 하이킹을 갈 때도 5일 중 3일간 비가 대차게 와서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일기예보를 계속 확인해 보다 잠깐 화창하다는 예보가 들 때마다 잽싸게 밖으로 나가 하이킹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덕분에 휴가 마지막 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하이킹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영국을 떠나면 언제 다시 또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스노우도니아 국립공원. 한 5년 뒤쯤에는 다시 방문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