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며 가본 곳 중 두 번째로 마음에 남는 곳은 바로 영국 남쪽 해안에 위치한 Seven Sisters (세븐시스터즈) 절벽입니다. 영국에서도 특히 날씨가 구리다고 알려진 북쪽 요크셔 지방에서 4년간 대학을 다니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날씨가 좋은 곳으로 가려했던 저는, 기어코 졸업 후 남쪽 끝자락에 직장을 잡으며 요크셔를 벗어났습니다. 다행히 지금의 아내도 같은 시기 남쪽 바다 근처에 직장을 잡으며 둘이 함께 그나마 날씨가 낫다고 알려진 잉글랜드의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잉글랜드의 북쪽과 남쪽의 날씨는 천지차이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남으로 내려갈 수 록 비도 그치고 구름도 없어지고 종국에는 해가 나오더니 바다에 다 닿았을 때는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정도 날씨면 아무리 영국이라도 살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이사한 동네는 Lewes (루이스)라는 전통적인 작은 도시로 런던에서 아래로 쭉 선을 그었을 때 나오는 바닷가 도시 Brighton (브라이튼) 옆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루이스에 어느 정도 정착한 뒤 바다를 워낙 좋아하는 저는 아내에게 근처 바닷가에 놀러 가보자고 했습니다. 차로 15분 거리에 Seaford (씨포드)라는 작은 바다 동네가 있길래 그리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시원했습니다. 씨포드로 향하는 드라이브는 뭔가 우리를 들뜨게 했습니다. 푸른 초원과 동산 사이를 지나 도착한 씨포드는 꼭 구글 사진에서 본 대로 평화롭고 푸르른 바다가 넓게 펼쳐진 곳이었습니다. 끝없는 해변을 따라 그 끝자락까지 가보니, 아니 웬걸 불현듯 하얀 절벽이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비현실적인 풍경에 이게 뭔가 하다 문득 어디 다큐멘터리에서 본 풍경이 기억났습니다. '아 그 하얀 절벽이 영국에 있었구나!' 절벽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등산하듯 위로 올라가 보니 끝없이 이어져 있는 하얀 절벽의 행렬들이 보였습니다. 바로 '세븐 시스터즈'였습니다.
줄줄이 이어진 절벽의 행렬에 일곱 봉우리가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세븐 시스터즈, 한국어로 번역하면 조금 촌스러운 일곱 자매 절벽이었습니다. 집에 돌아가 검색해 보니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영국에 오면 방문해야 할 대표적인 명소로 꽤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영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회사의 영국 동료들이나 아내의 가족 혹은 친척분들께 세븐 시스터즈를 언급했을 때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였습니다. 입이 떡 벌어지게 아름답지만 이상하게도 영국인보다는 관광객들에게 더 잘 알려진 세븐 시스터즈. 이 놀라운 곳에서 차로 고작 20분 떨어진 곳에 산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루이스에 사는 1년 반 동안 이 세븐 시스터즈를 몇 번이나 갔는지 모릅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주중이건 주말이건 씨포드 바다에서 수영하고 하얀 절벽으로 가 산책을 즐겼습니다. 친구들이 루이스로 놀러 올 때면 늘 세븐 시스터즈로 데려갔습니다. 부모님이 영국에 오셨을 때 모시고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빡빡해 못 보여드린 게 참 아쉽습니다. 언제 또 영국에 올 일이 있으면 그때는 꼭 세븐 시스터즈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세븐 시스터즈 중간쯤에는 관광객들이 늘 포진해 있던 걸로 미루어 보아 차가 없어도 올 수 있는 듯 보였습니다. 아마 런던에서 브라이튼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거기서 해안 도로 버스를 타면 세븐 시스터즈로 갈 수 있을 듯합니다. 대부분 영국으로 여행을 오면 런던으로 오실 텐데 혹시 특별한 영국만의 자연을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대중교통으로 가 볼 수 있는 세븐 시스터즈에 한 번 가 보시길 바랍니다. 가는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전혀 시간이 아깝지 않을 풍경을 마주 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