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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Nov 07. 2022

설렘이 덜 한 서른

앞을 보지만 뒤를 추억한다.

    서른이 되고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막연히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한다기보다는, 지난날 느꼈던 가슴 벅찬 감정을 자꾸 추억합니다. 중학교 때 짝사랑하던 여자애를 바라보며 느꼈던 설렘을, 갓 상경해 처음 지하철을 탔을 때의 두근거림을, 반지하 1.5평 쪽방에서 미래를 꿈꾸던 시간을, 정말 좋아했던 친구와 이별하고 마주했던 아픔을, 호주에서 로드트립을 하며 생생히 느꼈던 살아있음을. 그렇다고 서른이라는 나이가 이런 추억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치열하게 경험해 온 시간들이 쌓여 이제 '기대'하고 '설레는' 일이 잘 없기에, 모든 게 새로워 마냥 들뜰 수 있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삶에 능숙해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니, 모순적입니다. 서투를 때 느낄 수 있는 불안함, 긴장감, 설렘과 같은 감정이 능숙해지고 나면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라는 것을 아쉽게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알았다면 조금 아껴뒀을 텐데. 열심히 배우고 경험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낸 지난 시간이 돌연 후회가 된다는 게 참 씁쓸합니다. 지금껏 잘해놓고도 이게 무슨 꼴인지.

    요즘 제 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더욱이 아쉬운 생각이 듭니다. 지구 반대편 먼 나라의 작은 도시에 살며 이국의 언어로 소통하고 일하는 게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니. 스무 살 때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아득한 일인 것을. 꿈만 같던 여행들도 이제는 그저 작은 휴식입니다. 연차를 내고 3박 4일 바다 건너 파리로 가는 여정이 그리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10년 전에는 한 달 전부터 파리에 어디를 갈지 무얼 가져갈지 뭘 조심해야 하는지 부산을 떨며 준비했던 일을, 이제는 가기 전 날이나 되어서야 대충 환전하고 비행기에 훌쩍 몸을 싣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정돈되고 원하는 휴가를 사고 없이 보내고 옵니다. 짬이 찬 겁니다.

    그래서일까, 음악도 영화도 책도 자꾸만 옛 것을 돌려 듣고 보고 읽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추억이 묻은 것들은 다시 마주한다고 해서 그 추억이 소진되지 않고 오히려 되살아나 떨림을 가져다줍니다. 강아솔 씨의 < 아름다웠지, 우리 >, 영화 < Once >, 애니 < 너에게 닿기를 >, 판타지 소설 < 하얀 로냐프 강 >, 이 작품들은 모두 몇 번을 다시 듣고 보고 읽어도 늘 제게 떨림을 줍니다. 간혹 새로운 것임에도 떨림을 주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접할 때면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는 소중한 보석인 양 어느 한 곳에 어떤 형태로든 고이 저장해 둡니다. 최근 접한 것 중에 가장 큰 설렘을 가져다준 것은 네이버 오디오 클립을 통해 듣게 된 < 오피스 누나 이야기 >입니다. 설레는 마음을 붙잡고 시간을 잊은 채 무언가에 몰두하기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앞으로 단지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가슴 떨려 살아있음을 느낄 일이 얼마나 더 있을까요. 내년 4월에 있을 결혼식, 퇴사하고 떠날 또 한 번의 호주 로드트립, 제네바로 이사가 새로이 정착할 때. 굵직한 사건으로는 이 정도가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는 시간이 더 지나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와 함께하며 많은 새로움을 접하고 두근거림을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서 자식을 가진다는 것이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진된 새로움과 떨림에, 새로이 경험해보지 못한 많은 것들과 두근거림을 가져다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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