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03 살아남는 것이 승리라는
영화 '덩케르크'
전쟁영화는 좋아하지 않지만
일단 부담 없이 시작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니까요
어린 병사인 토미의 시선으로
절박한 전쟁을 바라보며 시작하죠
그러나 적군도 보이지 않고
치고박는 전투 장면도 없습니다
살아남아서 바다 건너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치열함이 있을 뿐
흐린 하늘을 이고 파랗게 출렁이는 바다 위를
나무로 만든 작은 요트 문스톤 호를 몰고
병사들을 구하러 가는 아버지 도슨과
아들 피터 그리고 피터의 친구 조지와 함께
바다로 향하는 마음이 되어보기도 하고
어뢰선에서 살아남아 문스톤 호에 구조된
'살아남은 군인'을 연기하는
킬리언 머피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합니다
전쟁의 트라우마는 영혼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군요
'덩케르크'는 영국 도버해협과 맞닿은
프랑스 항구도시랍니다
1940년 봄 2차 세계대전 초기에
덩케르크 해안에는
영국군 22만여 명과 연합군 11만여 명이
고립된 채 구조를 기다립니다
해변과 바다와 하늘의 모습이
푸른색의 그러데이션으로 일렁입니다
해변의 일주일과 바다 위의 하루와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시간과 공간과 장면의 혼합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답게
절실하고 절박하고 절묘합니다
해변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포위되고
바다에서는 병사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작은 배들이 덩케르크로 향하고
하늘에서는 적의 전투기를 공격해서
반드시 추락시켜야 하는 절박함 속으로
등장인물의 하나가 되어 몰입하게 됩니다
끝까지 싸워서 살아남는 것이 승리라는
전쟁영화 '덩케르크'는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40만여 명의 영국군과 연합군을 구하기 위한
작전을 그린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랍니다
바다 건너가 조국이지만
눈에 보인다고 갈 수 있느냐는
볼튼 사령관의 말이 절망적입니다
해상 전투 중인 구축함 대신
민간 상선과 어선을 부를 수밖에 없었던 건데
독일 잠수함 유보트가 해저에서 출몰하고
하늘에서는 독일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민간 어선과 상선들이
위험을 뚫고 와야 하는데
과연 올까요?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엘가의 음악이 느리게 흐릅니다
'수수께끼 변주곡' 중 9 변주 '님로드'인데요
'님로드'는 구약성서의 사냥꾼이자
고대 바빌로니아를 세운 왕이랍니다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던 볼튼 사령관은
망원경을 찾아듭니다
고립된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오는 작은 어선들의 행렬을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볼튼 사령관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자
'조국'이라고 대답하며
웃음을 머금는 모습이 멋지네요
두 팔을 들어 환호하는 병사들 속에서
나도 함께 손을 흔들어 봅니다
어른들이 시작한 전쟁이니
병사들을 구해야 한다는 도슨 같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민간 어선들이
느린 걸음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뭉클합니다
병사들이 타고 있던 배에 구멍이 뚫리고
물이 차오르자 배를 띄우려면 무게를 줄여야 하고 누군가는 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엉기며
생존 앞에서는 본능이 드러난다는 말 그대로
누군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 내려야 한다는
처참한 상황이 긴박하게 그려지고
바다의 기름에 불이 붙어
바다가 주황빛으로 불타오르는 장면은
푸르른 빛깔을 얼룩지게 만드는 처절함입니다
배로 끌어올리자 병사가 내뱉는 한 마디는
'집에 데려다줘요'
도버가 아니라 도싯이지만
어쨌든 고국이라는 기쁨을 안고
기차를 타기 위해 기차역에 모여드는
병사들에게 잘했다고 반겨주는 노인에게
'살아 돌아왔을 뿐'이라고 대답하자
그거면 된 거라는 노인은
시각장애인이라 쳐다보는 대신
토미의 얼굴을 가만가만 손으로 쓰다듬어요
철수는 승리가 아니지만
철수 성공의 기쁨을 알리는 신문에
피터의 친구 17세 소년 조지는
덩케르크의 영웅으로 소개됩니다
학교 성적은 별로지만 언젠가 장한 일을 해서
지역신문에 나면 선생님들도 볼 거라고
그러나 틀렸다고 눈이 안 보인다며
문스톤 호 갑판 아래에서 죽어간
어린 소년이 생각나 마음이 아파요
그리고 빨강 옷의 소년 피터는
공군이던 형을 전쟁 3주 차에 잃고
친구 조지까지 바다에서 잃었으니
그 마음의 상처가 깊숙이 오래 남겠지만
잘 견뎌내리라 믿습니다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바이러스와의 전쟁 같은 일상을 견디려면
울적한 블루 속에서 꼬물대는 희망을 찾으며
살아남는 것이 승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