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848 삶에 대한 우아한 질문

영화 '칠드런 액트'

by eunring

'칠드런 액트'를 보고 온 친구가

괜찮았다고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괜찮다니 봐야겠다 하다가

이제야 보게 됩니다

괜찮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학생 시절 예이츠의 시

'하늘의 옷감'을 읽고 외우며

감상에 젖던 추억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예이츠의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가 나옵니다


병실에서 애덤의 기타 연주에 맞추어

피오나가 부르는 노래 '샐리 가든'과

애덤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초록 드레스를 입은 피오나가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노래 '샐리 가든'은

같은 노래지만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처음 노래가 만남의 노래라면

나중 노래는 작별의 노래가 되니까요


완벽주의 판사 피오나가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17세 순수 소년 애덤을 병원으로 찾아가

아동법에 대해 설명하자 애덤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문구를 이용해

'그 법은 엉터리'라고 하죠


애덤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혈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다면

'판사님은 참견쟁이'라 생각한다는 말에

둘은 웃음을 터뜨리고

할아버지의 기타로 막 배우기 시작했다며

예이츠의 시에 곡을 붙인 '샐리 가든'을

기타로 치는 애덤 곁에서

피오나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입니다


영화의 제목 위 문구가

'우아하고 세련된 당신을 위한

원숙한 질문'이라는군요


우아함과 세련됨은

피오나 메이 판사를 연기하는

엠마 톰슨 담당이니 믿고 맡겨둡니다

그녀의 섬세한 내면 연기 못지않게

흐르는 음악과 배경과 대사까지도

우아하고 세련되니 더 말해 뭐해요


피아노 연주를 하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추스리고

차분히 갈무리하는 피오나의 모습도

우아하고 인상적이죠

바흐가 아내를 잃고 작곡했다는

'무반주 파르티타 2번'도 배경음악으로 흐르며

피오나의 감상과 심정을 대신해 줍니다


'독서에 대한 애정과

기타를 향한 새로운 열정

활발한 사고력 발휘와

장난기 많고 다정한 기질의 표출

그리고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삶과 사랑'을 생각해야 한다는

피오나의 판결문까지도

진지하고 품위 있고 아름답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그의 존엄성보다

생명이 더 중요합니다'라는

마무리 멘트까지도 완벽하지만

그 결정으로 피오나가 끌어안게 되는

책임의 무게는 묵직합니다


피오나는 장엄한 자태를 뽐내는

왕립재판소 안에 있는 고등법원에서 일하는데

영국 의회 개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인 전통 의복을 입고

하얀 가발을 쓴 모습이 독특하고 재미납니다


피오나의 판결로

믿음 대신 생명을 얻게 되는 애덤은

판사님이 아닌 인생친구 피오나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깁니다

예이츠의 시를 읽고

말도 안 되는 공상에 빠져 있다는

애덤의 메시지를 듣고

피오나가 치는 피아노 곡은

'나의 명랑한 밸런타인'이죠


남의 피가 자신의 몸을 흐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별로라는 애덤에게

'어쨌든 살았잖니'

재능이 있으니 잘 살아갈 거라고 하지만

애덤은 피오나바라기가 되어

그녀 곁을 맴돕니다


뉴캐슬로 출장 가는 열차 안에서

잔잔히 흐르는 음악에 젖어

서류 속에 들어 있는 애덤의 편지를 읽는데

궁금한 게 참 많다는 애덤의 질문이

줄줄이 어어집니다

예이츠의 시는 왜 위대하며

판사님은 무얼 믿고 나는 무얼 믿느냐며

언젠가 자신의 병이 재발할 것을 안다는

갑자기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애덤의 목소리를 눈으로 읽으며 피오나는 잔잔히 웃어요


지인들과의 저녁 모임 중인 피오나를

뉴캐슬까지 찾아온 애덤은

아빠랑 싸우고 집을 나왔다며

판사님이 자신을 구했다고 말하죠

구했으니 더 구해 달라는

진지한 부탁으로 들립니다


겉멋만 잔뜩 들어 고상한 척하면서도

자신의 장례식을 생각하면 슬펐다고

깊은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믿음으로 살았으나 신 때문은 아니었고

이제 바흐 곡도 치고 예이츠도 읽고

앞으로 다가올 삶과 사랑도 생각한다는 그에게

피오나가 묻습니다


'왜 왔니?'

간결하고 냉정하지만

삶이란 그런 거죠

삶은 우아하지도 친절하지도 않고

때론 쌀쌀맞고 매정하기까지 합니다


판사님이랑 살고 싶다고

방해하지 않고 하숙생처럼 살고 싶다며

함께 배를 타고 세계 일주도 하고 싶다고

응석 아닌 진지한 부탁을 안고

대책 없이 찾아온 애덤을 위해

택시를 불러주는 피오나에게

판사님이니 판결만 하지

왜 인생에 끼어들었냐고 애덤이 묻습니다

'내게 왜 그러셨어요?'


애덤을 태우고 기차역으로 떠나는

택시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그녀 역시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대하여

무거운 질문을 던졌겠죠

'내가 왜 그랬을까?'


초록 드레스를 입고 크리스마스 파티 중

애덤이 위중하다는 메모를 받고

동료를 위해 피아노 반주를 하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피오나가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피아노 건반에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이

안타깝고 눈물겹습니다


앙코르곡 '마이 퍼니 밸런타인' 대신

피오나는 예이츠의 시를 노래합니다

'샐리 가든 옆에서

나의 연인을 만났지'


호스피스 병동에 가서 만난 애덤은

수혈을 거부하는 건 자신의 선택이라고

성인이 되었으니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선택이라며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함께 배를 타고 세상 구경을 하고

시를 읽고 다가올 삶과 사랑을

생각하라고 하지만

애덤의 마음은 달라지지 않아요

자신의 선택이니까요

애덤의 홀로서기는 혹독합니다


집에 돌아와 피오나가 다시 꺼내 읽은

애덤의 편지 말미에 언젠가 병이 재발하면

비로소 자유로워질 거라고 쓰여 있죠

그렇게 애덤은 자유를 선택합니다


'그 아이는 내가 모든 질문에

답을 해 줄 거라고 믿었나 봐'라며

남편 잭이 내미는 손을 잡고

사랑스러운 소년 애덤이 마지막 가는 길을

먼발치에서 배웅하는 피오나의 슬픔까지도

차분하고 우아하고 묵직해서 아름다워요


너에게 나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영화가 건네는

삶과 신념과 사랑에 대한 질문은

진지하고 우아하지만

저마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답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 것이죠


예이츠의 시

'버드나무 정원을 지나'를

다시 읽어봅니다


'시냇가 들판에

내 사랑과 나는 서 있었지

기울어진 내 어깨에

그녀가 눈처럼 흰 손을 얹었네

강둑에 풀이 자라듯

인생을 편히 받아들이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때 나는 젊고 어리석었기에

이제야 눈물 흘리네'


인생이란 그런 거죠

젊고 어리석은 까닭에

한참 나중에야 눈물 흘리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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