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40 나팔꽃 닮은 기쁨
황금빛 호른의 소리
요즘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악기 소리가 있어요
호른이라는 이름을 가진
금관 악기죠
기다란 관이 동글동글 동그랗게 말리다가
끝부분에 이르러 활짝 피어난
나팔꽃을 닮은 밸브식 금관 악기인데요
산너머에서 날아오는 산울림 소리 닮아
힘차고 풍부한 소리를 가졌답니다
트럼펫 트롬본 튜바 등
다른 금관악기들보다
음색이 온화하고 부드러워
오케스트라에서 전체 악기들의 소리를
모으고 감싸며 보듬는 역할을 한다는데요
내 귀에는 저녁 놀빛 소리로 들립니다
애조를 띤 음색이 부드럽고 따사롭지만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에서는
세 대의 호른이 포악한 늑대 소리를 내며
으스스한 분위기를 표현해주기도 하죠
동그랗게 말려 있는 관의 길이가
무려 3.7 미터랍니다
관의 길이가 긴 만큼 깊은 울림을 내지만
분명하고 정확하게 연주하기가
몹시 까다로운 악기이기도 하답니다
호른의 역사는 오랜 옛날
동물들의 머리에 난 뿔로 만든
신호용 나팔에서 시작되었대요
동물의 뿔에 구멍을 뚫거나
끝을 잘라내고 입술로 불어 소리를 내면
산울림처럼 멀리까지 소리가 전해져서
신호를 전달하는 악기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호른을 박쥐라고 부르기도 한다는군요
금관악기와 나란히 함께 연주할 때는
유난히 화려한 소리를 뽐내다가도
이웃사촌 목관악기들과 함께 할 때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다소곳하게 어우러지는
두 얼굴의 매력을 지녔답니다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호른 사랑이 유별났다고 합니다
말러는 호른 연주자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현란한 기법들을 악보에 써넣어
호른 주자들을 쩔쩔매게 했대요
교향시로 유명한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최애 악기가 호른이라고 할 만큼
호른을 위한 곡이 많다는데요
자신도 호른 주자였고
아버지 프란츠 슈트라우스도
당대의 뛰어난 호른 연주자였답니다
당연히 호른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 테고
이해가 깊어지면 사랑도 깊어지는 거죠
반짝반짝 별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모차르트도 어릴 적부터 호른을 애정했답니다
4개의 호른 협주곡을 작곡했는데
모차르트의 절친인 호른 주자
요제프 로이트게프를 위한 곡들이었대요
뛰어난 호른 연주자인 로이트게프는
조카뻘 나이의 모차르트를 진심으로 아꼈고
모차르트 역시 로이트게프를
당나귀 소 등 애칭으로
자필 악보에 쓸 정도로 친한 사이였답니다
'이랴 당나귀군!' '아이고 이제 끝이야'와 같은
익살스러운 문구들로 친밀감을 표현했다죠
자신을 당나귀나 소 바보라고 부르는
순진무구 장난스러운 모차르트를
진심 사랑하고 아꼈을 로이트게프는
온화한 호른의 음색을 닮았을 것 같아요
황금빛 저녁놀이 물들 무렵
부질없는 생각들은 고이 접어 두고
황금빛 음색의 호른을 사랑했다는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4개의 호른 협주곡 중에서
가장 먼저 작곡했다는 협주곡 2번의 헌사는
'당나귀 소 바보인 로이트게프를 동정하며'랍니다
바보라고 거침없이 부를 정도로 절친이었을
두 사람의 우정이 진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규모가 작고 기교가 화려하지 않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곡이라지만
처음이고 작고 수수할수록
다가서는 걸음은
첫사랑의 설렘으로 눈부실 테니까요
나팔꽃의 꽃말이 기쁜 소식이듯이
나팔꽃 닮은 악기 호른이 건네는 소리도
부드러운 금빛으로 젖어드는
기쁨의 소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