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85 인생이 비극이라면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아주 느리게를 의미하는데요
말러가 '이 곡은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한
교향곡 5번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으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 나온답니다
감성 충만한 4악장에 흐르는
로맨틱하면서도 쓸쓸한 현악기의 선율이
알마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라는 말도 있어요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것이
사랑의 속성이긴 합니다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말러는
스스로 '고향이 없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어디에서나 이방인이었다고 고백한
까다롭고 괴팍하고 냉소적인 그가
아름다운 알마 쉰들러와 사랑에 빠졌을 때
작곡한 곡이랍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하죠
하프와 현악기 연주로 이어지는
4악장의 주제는 사랑과 죽음이라고 해요
'아다지에토'에는 그의 삶이 그대로 스며들어
달콤 씁쓸 적막하게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교향곡 5번 작곡을 시작할 때
심각한 장출혈로 인한 죽음의 위기를 겪고
완성할 무렵에는 알마와의 결혼이라는
사랑의 기쁨을 덥석 끌어안았으니
죽음과 사랑이 끝말잇기처럼 이어져
어우러지고 버무려진 셈이죠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의 죽음'을
영화로 만든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은
토마스 만과 구스타프 말러
두 사람 모두를 흠모했답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작가 아센바흐를
말러인 듯 보이는 작곡가 아센바흐로 바꾸고
아센바흐 역의 배우 더크 보거드의 모습을
작가 토마스 만의 외모처럼 꾸며
구스타프 말러와 토마스 만
두 사람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오르게 했답니다
영화의 주인공 구스타브 폰 아센바흐는
뮌헨에 사는 작곡가이며 음악교수인데
병이 악화되어 요양을 위해
베니스의 리도 섬으로 떠납니다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의 평가에 대한 괴로움에서 벗어나
휴양지 리도 섬에 도착한 그날
운명과도 같은 미소년 타지오를 만나
눈길을 빼앗기게 되죠
눈길이 간다는 건 마음이 간다는 것이고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따라가는 것이니
그는 타지오를 뒤따르기 시작합니다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베니스의 뒷골목과 리도 해변
그리고 산 마르코 성당까지
소년이 가는 곳이면
무작정 어디든 뒤따르며
자신의 집착과 욕망에 괴로워합니다
콜레라가 리도 섬에까지 밀려들어와
호텔 투숙객들이 하나둘 떠나가지만
그는 섬을 떠나기는커녕
소년 타지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머리를 염색하고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며
소년의 주변을 그림자처럼 맴돌다가
마침내 소년 타지오의 가족이
섬을 떠난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마주친
타지오가 그에게 꽃미소를 건네자
'안녕 타지오
너무 짧은 만남이구나
신께서 널 축복하시길'
그렇게 속삭일 때 흐르는 4악장의
현악기 선율이 감미롭고 애잔합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잿빛으로 음울하지만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4악장
아다지에토는 로맨틱하고 아름답습니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이 어울리게 쓸쓸하고
깊숙한 고독까지도 매혹적이죠
실제로 말러는 살아 있는 동안
늘 죽음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은 희극보다 비극에 가까운 것이죠
행복에 겨워 웃어도
실컷 웃어보아도 웃음 끝에 매달리는
눈물 한 방울 같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이른 봄날이 주는 스산함 때문일 거라고
애먼 봄날을 탓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