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다 928 인생을 짊어지고
일본 영화 '봄을 짊어지고'
비 소식 물러간 새파란 하늘에 구름 동동
바람이 소란하게 나부끼는 걸 보면
어디선가 봄이 오고 있나 봅니다
어깨에 봄소식을 짊어지고 오는
발자국 소리 나직해요
유채꽃 노랑노랑으로 시작해서
20년 전 아버지 이사오와 소년 토오루의
눈 덮인 산 등반 모습이 아름다운 영화
'봄을 짊어지고'를 보기에 좋은 날입니다
다테야마 최고봉인 오난지야마에 있는
오난지휴게소 근처에서 촬영한 영화라죠
사계절의 풍광이 아름다운 일본의 알프스
다테야마 등반을 눈으로 시작해 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지지 말고 평소대로 하라'고
아버지 이사오(코바야시 카오루)는
눈밭에 넘어진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소금 사탕 한 알을 물려줍니다
잘 버티고 따라와 준 기특한 아들과 함께
해발 3000미터 스미레(제비꽃) 산장에 도착하자
'나이 들수록 등에 짊어진 짐이 무거워지고
지도는 물론 이정표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이
목적지도 스스로 정해야 한다'라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에베레스트를 넘는
학 이야기를 덤으로 들려주시죠
산장에 가득 쌓인 눈을 치우고
스미레 산장 개점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추워 무서워' 중얼거리는 소년 토오루는
20년 후 도쿄 자산운용회사에서 일합니다
조난자를 구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은 토오루는
산장에 한번 다녀가라는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떠올리며 고향으로 갑니다
토오루 엄마 이름을 딴 스미레 산장 일을 돕는
타카자와 아이(아오이 유우)의
짧은 커트머리가 신선합니다
토오루(마츠야마 켄이치)의 말대로라면
산속 날씨 같은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아직 눈 덮인 산장으로 함께 가는
엄마 스미레와 아이 그리고 토오루는
아버지가 아끼시던 돌을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자리에 놓고
아버지에게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드려요
다테야마 삼나무 같은 아버지는
눈 처마를 비키지 못한 등산객을 구하고
산에서 죽으리라는 평소의 바람대로
산에 머무르는 바람의 영혼으로 남으십니다
저녁해가 아름답게 저무는 산장에서
토오루는 이겼다 졌다 뿐인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장지기가 되기로 합니다
스미레 산장을 이어받는다는 건
아버지의 꿈을 짊어지는 것과 같은 거죠
눈길을 걸어 식자재를 운반하는 토오루는
'짐과 다투면 더 무겁게 느껴지니
짊어진 짐과 사이좋게 지내야 해
한 걸음 한 걸음 지지 않도록
평소대로 걸으라'라고
아버지와 같은 조언을 해주는
타다 고로 상(토요카와 에츠시) 덕분에
첫 짐을 무사히 산장까지 운반합니다
사람과 담배의 공통점을 아느냐고
고로 상이 물어요 '사람과 담배는
연기가 되어야 비로소 가치를 안다'라는
고로 상의 말씀에 1표 던집니다
떠돌아다니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어머니의 고로 상 소개가 재밌어요
바람처럼 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고로 상은
아버지 이사오의 대학 산악부 후배랍니다
바람 따라 여행 중이라는 고로 상은
토오루에게 마음의 길을 따라가라고 하죠
무리한 산행을 하다가 장대비를 만나 추락한
대식가 청년 스나가를 구하는 토오루에게
기상도 읽는 법과 산의 무서움을 알려주라는
경비대장의 한마디는 따끔합니다
힘겹게 청년을 구하고 실의에 빠진 토오루는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곰곰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지지 않고
산장지기로 성숙하고 성장해가는 토오루는
아버지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고로 상
그리고 밝고 활기찬 미소로 함께 하는
아이와 함께 자신의 역할을 찾아나가죠
토오루가 힘들게 짊어지고 오는 식자재로
아이가 정성 다해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생각만 해도 기운이 난다며
인생이란 헛된 노력의 연속이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삶이라는 고로 상의 말에
자신의 걸음으로 걷는 만큼의 거리가
진짜 보물이라고 답하는 토오루 많이 컸죠?
스미레 산장 일은 녹록지 않아요
그러나 사계절 풍광이 예술입니다
산이 주는 평온함은 제비꽃처럼 고즈넉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은
난로의 불빛처럼 따사로워요
산등성이를 여유롭게 넘어가는
저녁해의 눈부심을 바라보며
노랑제비꽃이 수 놓인 코스터 위에 놓인
핸드드립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어요
바람 같은 사나이 고로 상의 말처럼
스미레 산장은 마음의 피난 산장입니다
지친 마음에 산소를 듬뿍 안겨 준답니다
산장을 닫고 내년을 기약하며 정리하는 날
갑자기 쓰러진 고로 상을 구하기 위해
토오루는 고로 상을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내려옵니다
죽을힘을 다하는 토오루의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아름다워요
함께 산을 내려가자고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토오루의 외침이 간절합니다
회복 후 다시 돌아온 고로 상은
에베레스트를 넘어가는 학 이야기로
모두에게 웃음을 주네요
'꽃을 흔드는 바람이
계절의 움직임을 알립니다
변함없이 아무것도
바람대로 되지는 않지만
조금은 그때보다 강해지셨나요?'
다테야마의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마음의 편지' 노래가 흐르며
영화는 떠오르는 아침해로 마무리합니다
'한 걸음씩 내디디면
당신 마음에 가까이 다가갑니다'라는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르는
노래가 감미로워서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마음은 선뜻 다테야마를 떠나지 못합니다
'스미레 산장에
구름 봉우리 내려앉고
창밖엔 아침 안개 가득하다'라고
등반객 아야가 읊은 시처럼
아름다운 한 순간을 느낄 수 있는
다테야마에 가보는 날이 올까요?
물론 산의 날씨는
인생의 날씨와도 같아서 방심은 금물이죠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고로 상이 말하거든요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올라
산봉우리 제비꽃도 만나보고 싶어요
'때늦은 눈도 내릴 때를 알고
너무나 장난스러운 계절 뒤에
지금 봄이 오고 넌 예뻐졌어
작년보다 훨씬 예뻐졌어'
카구야 히메의 잔설(殘雪)이라는 노래죠
감미롭고 정겨운 노래가 떠올라요
영화가 끝난 한참 후에도
'시간이 흐르면 어린 너도
어른이 될 거라곤 깨닫지 못한 채
지금 봄이 오고 넌 예뻐졌어
작년보다 훨씬 예뻐졌어'
아이가 부르는 콧노래가
문득 들려오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