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8 바지 역할을 아시나요?
미소년 케루비노
모차르트의 재치 만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미소년 시종 케루비노가 있어요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밝고 유쾌하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모차르트를 닮은 듯 보여요
어디까지나 내 눈에 그렇다는~^^
여자만 보면 설렘으로 심쿵~
심장이 나풀나풀 나대는 미소년 케루비노는
'모든 여자가 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모든 여자가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니
이를 어쩜 좋아요
케루비노는 사랑을 사랑하는
봄날의 소년기를 지나는 중인 거죠
사춘기 소년 케루비노는
여러 여자들에게 부질없이 사랑을 고백하고
백작부인 레지나를 몰래 훔쳐보며
혼자서 끙끙 가슴앓이를 하는데요
2막에서 백작의 무관심으로 슬퍼하는
백작부인 앞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사랑의 괴로움을 그대는 아는가'입니다
백작으로부터 군입대를 명 받은 케루비노가
흠모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노래라면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안타까운 작별의 노래죠
'사랑이 무엇인지 아는 숙녀분들에게
내 마음속 사랑을 보여드릴게요
내 사랑의 경험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사랑의 감정이란 내게 새롭고 낯선 것이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욕망과
갈증으로 차올라 기쁘다가도 고통스럽고
차갑게 얼어붙은 영혼이 한순간
다시 타오르기를 반복하죠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로부터
사랑의 축복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고
까닭 모를 심장의 두근거림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떨림에
한숨지으며 풀이 죽기도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술렁술렁 마음이 괴롭지만
그런 번민의 순간을 또 기다리게 된답니다
언제쯤이면 평안을 찾을 수 있을지
그대는 아시나요 사랑이 무엇인지'
클라리넷의 음색을 좋아했던 모차르트는
미소년 케루비노의 캐릭터를
클라리넷으로 묘사했다죠
캐루비노의 아리아가 시작되기 전에
클라리넷이 주제 선율을 연주하며
천방지축 귀엽고 자유분방하고 사랑스러운
사춘기 소년 케루비노의 이미지를
표현해준답니다
'그대는 아는가 사랑이 무엇인지
이 새로운 사랑을 난 알 수 없어요'
케루비노의 아리아는
영화 '원더우먼 1984'에 나오는데
영웅이던 스티브 트레버 대위가 어리버리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장면에 흐릅니다
50년 전 이별한 연인 스티브와 다이애나
두 사람의 첫 번째 바깥나들이에 흘러나오는
서정적이고 우아하고 감미로운 노래 속에서
불안한 감정이 찰랑댑니다
1막에서 '내가 누군지 나도 몰라요'를 부르며
수잔나에게 들이대며 철없는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아리아에도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십 대 소년 케루비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사랑을 하면 나도 나를 알 수 없어요
기분이 좋다가도 한없이 우울하고
뜨겁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되었다가도
금세 얼음장이 되어 식어버려요
여자만 보면 가슴이 마구 떨려요
나는 부질없이 응답도 없는
사랑의 말들을 건네고 있어요
시냇물에 그늘에 산봉우리들을 향해
꽃들에게 풀밭에 샘물을 향해서도
메아리와 허공과 산들바람에게도
그리고 깨어있을 때나 꿈속에 있을 때나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럼 난 혼자서라도 사랑을 노래할 거예요'
한 마리 나비처럼 사랑으로 나풀대는
철없는 케루비노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해서 자꾸만 마음이 갑니다
그런데요~
케루비노 역이 바로 바지 역할이래요
여성 성악가가 남성의 역할을 연기하는 경우를
'바지 역할'이라고 한답니다
18세기에 나폴레옹이 나폴리 음악원의
카스트라토 입학을 금지하고
카스트라토가 청중들의 마음에서 멀어지자
카스트라토의 자리를 대신할 여성 가수가
남장을 하고 등장하게 되었다고 해요
대개의 바지 역할은
메조소프라노가 부른답니다
미소년 케루비노의 미성숙한 목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모차르트는 애초부터
케루비노 역을 바지 역할로 구상했기 때문에
메조소프라노에게 배역이 주어진다죠
미소년 케루비노는
군대에 잘 다녀왔을까요?
사랑스러운 케루비노는
천방지축의 옷을 벗어던지고
듬직하고 멋진 청년으로 잘 자랐을까요?
사랑의 괴로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봄날처럼 보송한 사랑을 배우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