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2 찬란한 눈물의 시간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하필이면 마음 쓸쓸하고 적막한데
봄꽃들은 저마다 손 흔들며 바람에 뒤척이고
철없던 시절 마음을 기대며 듣던 음악이
봄날의 은하수처럼 흘러나오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중
24번 주제를 빌려온 라흐마니노프가
24개의 변주곡으로 완성했다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찬란한 봄날과 잘 어울립니다
그중에서도 18변주가
어리고 철없던 나의 최애곡이어서
지금도 듣다 보면 코끝이 찡해집니다
지난 시간의 흔적이 꽃망울처럼 맺히고
기쁨과 슬픔과 아픔까지도 나풀나풀
봄꽃처럼 눈부시게 빛나며 되살아나거든요
러시아의 낭만주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데
눈부시게 화려하고 기교적인 곡으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아름다움에
우아한 재치까지 깃든 곡이랍니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노곡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 1도 없는 곡이죠
랩소디는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곡이랍니다
우리말로 광시곡이라고 하는데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느린 변주인 18변주 안단테 칸타빌레가
눈물겹게 감성적이고 애잔하며 감미롭습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에 어울리는 애틋함이
봄비처럼 촉촉이 젖어들어요
이제는 하늘의 별이 된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시간 여행자로 나와
1972년에서 60년을 훌쩍 건너뛰어
1912년의 로맨스를 그린 타임 슬립 영화
'사랑의 은하수(Somewhere in Time)'에도
18변주가 믄하수처럼 흐릅니다
남주인공 리처드가18변주를 흥얼거리자
여주인공 엘리스가 무슨 곡이냐고 물으며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지만
처음 듣는다고 하죠
1934년 작곡된 곡이니
1912년에 들을 수 없는 건 당연합니다
로맨틱한 18변주가 영화의 장면들을
아름답고 애틋하게 적신답니다
마지막 24변주에는
'크림 드 민트 변주'라는 별칭이 붙었답니다 라흐마니노프 자신도 두려움을 느낄 만큼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한 연주라
작곡가 자신도 긴장을 풀기 위해
연주 전에 민트향이 나는 칵테일을
한 잔씩 마시곤 했다는군요
'한 생애를 위해 음악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음악을 위해 한 생애가
충분하지는 않다'라고 말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들으며
봄날의 허망하고도 눈부신 짧음과
찬란한 눈물의 시간을
잘 견뎌보렵니다
아련한 슬픔의 봄날과
함께 하기에 충분한 음악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그중에서도 18변주는
봄날의 은하수처럼 반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