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34 봄날의 벚꽃 편지
영화 '어톤먼트'
이른 아침 봄바람에
하늘하늘 연분홍 벚꽃비를 맞으며
흩어져 날리는 벚꽃을 그대로 보내기 아쉬워
사진 한 장으로 찍어 마음에 간직합니다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 안으로 분홍 나비들처럼
마구 날아드는 벚꽃잎들 속에서
영화 '어톤먼트'를 봅니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시얼샤 로넌
두 배우를 좋아합니다
'어톤먼트'에는 키이라 나이틀리와
어린 시얼샤 로넌 두 배우가 자매로 나와요
그리고 로비 역의 제임스 맥어보이의
여리고 섬세한 눈빛이 먹먹함으로 남습니다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가 원작이고
'어톤먼트'가 바로 속죄라는 단어죠
어리고 상상력이 뛰어난 열세 살 소녀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의 불안하고
불분명하고 불확실한 증언으로
서로 사랑하는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가 헤어지게 되고
누명을 쓴 로비는 감옥을 거쳐
참혹한 전쟁터로 나가게 됩니다
세실리아는 집을 떠나 간호사로 일하며
로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죠
1940년 6월 1일
사랑하는 세실리아를 생각하며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가 중얼거려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난 돌아갈 거야
황혼의 서리 파크를 걸어오던 멋진 신사복과 약속된 미래로 거들먹거리던 순수한 열정으로 도서관에서 당신과 사랑을 나누던 그 남자로
이야기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덩케르크 철수 작전 중
완전히 회색빛 얼굴의 로비는
차 한 잔 간절히 마시고 싶다며
남녀 주인공이 달콤 키스를 나누는
커다란 흑백 스크린 앞에서
지친 표정으로 힘없이 고개 떨구다가
환상 속에서 군화를 벗어요
엄마가 다정히 발을 씻겨주는데
정신없이 맨발로 뛰쳐나가
세실리아와의 추억과 약속이 깃든
하얀 판벽에 창문은 하얀 별장을 찾지만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전우가 말하죠
무너지고 쓰러진 폐허 아래
그의 사랑과 추억이 묻혀 있어요
패혈증으로 쓰러지는 로비는
잠결에 소리칩니다
'널 찾고 널 사랑하고
너와 결혼해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겠어'
그리고 세실리아의 속삭임을 들어요
'사랑해 돌아와 나에게 돌아와'
3주 전 런던에서는
열여덟 살이 되어 배역이 바뀐
단발머리 브라이오니(로몰라 가레이)가
탤리스 간호사가 되어 일하는 병원에서
'분수 옆의 두 사람'이라는
글을 쓰고 있어요
'어리고 바보 같은 한 소녀의 이야기'라고
브라이오니가 동료에게 말합니다
'침실 창문 밖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걸 보고는
자기는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열세 살의 철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 거죠
브라이오니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제야 모든 걸 깨닫기 시작했다며
언니 세실리아에게 만나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자신이 한 지난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과의 마음을 담아서요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브라이오니는
머리에 부상이 깊은 병사의 곁에서
프랑스어로 말하는 병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드뷔시 곡을 연주하는 동생 안나 이야기를 하던
병사는 두려움에 떨다 숨을 거두죠
굳은 얼굴로 걸어가는 장면에
드뷔시의 '달빛'이 흘러나오고
흑백으로 병사들의 웃는 모습이 비치는
TV 전쟁 뉴스 장면으로 이어지고
브라이오니는 깊은 후회와 자책감에 사로잡혀
언니 세실리아를 만나러 갑니다
만나 달라는 부탁의 편지에도
답장이 없는 언니 세실리아를 찾아온
브라이오니는 꼭 할 얘기가 있다고 하죠
판사님을 찾아가서 진술을 바꾸고 싶다는 브라이오니에게 로비가 물어요
'내가 갇힌 걸 상상이나 해봤니?'
열세 살의 철없고도 끔찍한 범죄를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고백하느냐고
상상 속 로비가 그녀를 다그칩니다
'진실을 밝혀 그리고 우릴 내버려 둬'
영화는 훌쩍 시간을 건너뛰어
상상력이 뛰어나던 소녀 브라이오니가
혈관성 치매에 걸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며
'속죄'라는 제목의 21번째 신작 소설을 위한 인터뷰를 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마지막 소설이자 첫 소설이라고
전쟁 당시 종군 간호사로 일하며
병원에서 쓰기 시작한 자전적 소설이지만
그때는 제대로 쓸 줄 몰랐다고
브라이오니가 말하죠
감옥의 상황과 덩케르크 철수에 관해 찾아보며
미사여구 없이 진실만을 쓰려고 했으나
겁쟁이라 1940년 6월의 그날
언니 세실리아를 만나러 가지 못하고
상상 속 고백을 했다는 반전을 보여줍니다
로비는 6월 1일 덩케르크 철수 전날
이미 패혈증으로 죽었으므로
세실리아도 그해 10월 방공호인
지하철역 폭탄 사고로 죽었으므로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는
그토록 갈망하는 재회의 시간을 갖지 못했고
그 시간을 가로막은 건 자신이라고 고백하죠
책의 결말에서는
마지막 선물로 만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고
두 사람에게 행복을 주었다고 덧붙입니다
나약함이나 회피가 아니라는
그녀의 고백에 이어지는 장면이
파도소리 자유롭게 펄럭이는 바닷가입니다
로비와 세실리아 두 사람의
아름답고 행복한 바닷가 장면이
위로처럼 파도와 함께 철썩이다가
그들이 만나자고 약속했던
바닷가 별장의 고즈넉함으로
애틋하게 끝납니다
먹먹하고 아릿한 여운이 깊어서
다시 동네 한 바퀴 돌아야겠어요
바람이 스치고 지날 때마다
작별의 손인사라도 건네듯이
분홍 비늘 같은 꽃 이파리 떨구는
봄날의 벚꽃 편지를
고요히 마음에 담아오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