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40 봄비에 젖는 저녁의 소리
영화 '소리꾼'
하루 종일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봄 아씨 발자국처럼 사뿐사뿐
마음의 창가에 스치는 빗줄기는
봄날의 연둣빛으로 은은히 향긋합니다
어느새 저녁은 빗줄기 타고 내려와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머무르고
촉촉함에 지친 하루를 마음의 온기로 다독이며
한 편의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꾼의 판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비단결 같은 소리는 아니고
명주실 같은 매끈함도 아니지만
주룩주룩 빗소리처럼 거친 듯 순수하고
깊숙하고 순박한 소리꾼의 소리가
봄비에 흠뻑 젖어드는
저녁의 소리를 닮았습니다
심금을 울린다는 말보다
더 적당한 표현은 없는 것 같아요
영화 '소리꾼'은
영화에 담긴 판소리 뮤지컬입니다
소리꾼 학규를 연기하는 이봉근은
배우가 아닌 국악인이랍니다
때는 조선 영조 10년
소리꾼 학규는 사라진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으러 조선 팔도를 유랑하며
판소리 '심청가'를 지어 부르죠
판소리는 고수의 북장단에 맞추어
소리꾼이 몸짓을 하며 대사와 소리로
이야기를 엮어 가는 민속악인데요
소리꾼 학규와 눈먼 어린 딸 청이가
판소리 '심청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액자 구조가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학규의 딸 청이(김하연)
그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는 대봉(박철민)
몰락한 양반(김동완)이 함께 하며
슬픔도 주고 웃음을 건네기도 하죠
소리꾼 학규 역의 명창 이봉근의 노래가
봄비에 젖어드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유랑길에서 청이(김하연)가 부르는
'너영나영' 노래도 해맑게 마음을 울리네요
'너영나영'은 '너하고 나하고'라는 뜻이죠
소리꾼 학규의 판소리 '심청가'가
고단한 삶에 지친 백성들에게 인기를 끌자
민심을 혼란하게 하는 죄로 붙잡혀
옥에 갇힌 부인 간난을 만나는
장면이 안타깝습니다
양반님네 잔치에 광대 패거리들을 불러 내
판소리 '심청가'로 사람들을 울리면
목숨을 살려준다고 약속해놓고는
오히려 민심을 어지럽혔다는 양반님네 횡포에
몰락한 양반이 툭 던지고 가는 시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시구라
귀가 솔깃합니다
'금항아리의 술은 백성들의 피요
옥쟁반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역시나~ 암행어사 출두가 이어지네요
이도령의 우정출연이 재미납니다
하루 종일 하염없이 내리는 봄비가
주룩주룩 어둠을 밟는 소리 위로
사뿐사뿐 아씨 걸음으로 다가온
소리꾼의 구성진 판소리는
눈물과 웃음으로 젖어들어요
'심청가'와는 달리 눈먼 청이가
반짝 눈을 떠 엄마를 알아보고
그렇게 학규와 청이는 간난이를 찾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해피엔딩이라 얼마나 다행인지요
'너영나영 두리둥실 놀고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참사랑이로구나'
청이의 맑은 노랫소리가
귀에 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