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59 사랑의 쓸쓸함까지도 매력적인

영화 '화양연화'

by eunring

사랑 이야기인데 이별 이야기입니다

이별 이야기인데 여전히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별 후에 오는 사랑의 아픔과

짙푸른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꽃 피고 지는 봄날의 화양연화 속에서

인생의 '화양연화'를 봅니다


봄꽃 피었다 진 자리에 여운이 남듯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잔상이 오래 남고

볼 때마다 여운의 그림자는

더욱 길고 깊어집니다

사랑은 쓸쓸하고 이별은 외롭고

그리움은 먹먹한 영화 '화양연화'는

OST까지도 매력적입니다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

(Quizas Quizas Quizas)

'아마도 perhaps'라는 뜻이라죠

'당신은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언제나 당신은 나에게

아마도 어쩌면 아마도라고 말하죠'

화양연화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냇 킹 콜의 노래와 함께

남은 봄날을 아련히 물들일 것 같아요

아마도 어쩌면 아마도~


장만옥의 치파오는 처연하게 아름답고

화려한 차림새로 국수를 사러 가며

손에 들고 가는 보온통은 외롭습니다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도 섬세한

양조위의 반듯하게 빗어 넘긴 머릿결과

정장 차림은 단정한 만큼 적막합니다


느린 화면과 비좁은 계단의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과

스치듯 지나치는 두 사람의 만남이

애틋하고 적막하고 진지해서

마음에 오래 남는 영화 '화양연화'는

현악기의 선율이 하염없이 젖어드는

일본 영화 유메지의 OST '유메지의 테마'까지도

달콤한 봄날의 쓸쓸함과 잘 어울립니다


남편의 넥타이와

주모운(양조위)의 넥타이가 같고

아내의 가방과 소려진(장만옥)의 가방이 같아서

두 사람은 배우자의 바람을 눈치챕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묻는 그녀와 그는 바로 이웃에 살고 있어요


'우린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라고 한참 후에 그가 말합니다

그들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었는데

그들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괴로워하며

어쩌다 보니 그녀를 사랑하게 되지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으려 애씁니다


두 사람은 왜 그들과 달라야 했을까요?

두 사람이 그들과 같았더라면

두고두고 꺼내볼 애틋한 추억이 없었을 거고

여러 번 보아도 마음을 울리는

애잔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 테죠


두 사람이 각자의 집에서

벽을 사이에 두고

벽에 등을 기대어 노래를 듣는 장면이

슬프고도 아름답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저우쉬엔이 부르는 '화양적 연화'

홍콩영화 '장상사(長相思)'의 OST랍니다

인생의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라고 라디오 진행자가 말하죠


'꽃다운 시절

달빛과도 같은 생각과

눈과 얼음처럼 총명함'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들으며 한 화면 속에 등지고 앉아

벽에 기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쓸쓸함으로 다가섭니다


사랑을 접어 간직한 채

싱가포르로 떠나며 그가 물어요

배표가 한 장 더 있다면 함께 가겠냐고

대답 대신 그녀가 물어요

'내게 자리가 있다면 내게로 올 건가요?'


미리 이별 연습을 하고

구슬프게 우는 그녀를 달래는

'울지 말아요 연습인데'

그 말이 왜 이리 가슴 아플까요

연습인데~ 연습이라는데요


싱가포르에서 동료와 밥을 먹다가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을 때

산에 올라가 나무 한 그루 찾아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밀을 말하고는

진흙으로 봉인했다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싱가포르에서 돌아와

옛 아파트를 찾은 그가 옆집도 이사를 가고

애를 키우는 여자가 산다는 말을 듣고는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가고

그 시절의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막으로

안타까움을 대신합니다


캄보디아의 유적지에서

작은 구멍을 오래 들여다보며

사랑의 비밀을 봉인하는

그의 모습은 고요히 적막하고

그의 마음을 대신하는 엔딩 자막은

이별 후에 오는 사랑으로 아프고

진한 그리움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라진 그 세월들은 마치

먼지가 쌓인 유리창 너머에 있는 것 같아서

보이지만 손으로 만질 수는 없어

지나간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그가

먼지 쌓인 유리를 뚫고 나갈 수 있다면

사라진 세월 속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지나간 꽃다운 시절 속에 머무르던

눈부신 기억들은 오래오래 그리움으로 남겠죠

꽃 진 자리에 잎 나고 열매 맞듯이

그리움의 열매 알알이 맺히는

봄날의 영화 '화양연화'의 끝 맛은

슬프고도 위태로운 사랑이 남긴

먹먹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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