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3 유쾌함과 따스함 사이
현실 남매 영화 '라 파미에'
오빠라고 불러보지 못했습니다
엄마도 큰딸 아버지도 큰아들이어서
양쪽 모두에서 내가 맏이거든요
양쪽 어디에도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없어서
내게는 낯설고 서먹한 호칭입니다
울 엄마도 마찬가지로 양쪽에서 맏이라
오빠라고 부를 사람이 없으셨죠
언젠가 오빠와 누이동생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다가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리실 때 속으로 피식 웃었습니다
오빠가 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
1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라 파미에 La Famille'는
프랑스어로 가족이라는 뜻으로
오빠를 둘씩이나 가진 누이동생 롤라
3남매의 이야기인데요
유쾌하고 따스한 영화라고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영화는 일단 귀가 즐거워요
몽글몽글 부드러운 프랑스어가 듣기 좋거든요
유쾌한 따스함에 눈물의 섬세함까지 더해진
영화를 보는 동안 인생의 자잘한 슬픔까지도
시냇물처럼 맑아지는 듯합니다
누이동생 롤라(루디빈 사니에)와
큰오빠 브누아(장 폴 루브)
작은오빠 피에르(호세 가르시아)
부모님을 일찍 여읜 3남매는
정기적으로 부모님의 묘지를 찾아가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뭔가 문제가 있을 때는
부모님의 묘지 앞에서 털어놓기도 하죠
큰오빠 브누아의 세 번째 결혼과
작은오빠 피에르의 실직
막내 여동생 롤라의 불임 등
삶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주저앉지 않고 우애로 극복해나가는
3남매의 모습이 정겹고 따스합니다
철없고 눈치도 없고 사랑에 약한
큰오빠 브누아의 세 번째 결혼식에서
새 형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 버벅대는
작은오빠 피에르는 헌 건물 폭파 전문가인데
옆 건물에 균열을 만드는 바람에 해고당하죠
이혼한 전 아내에게 어려움과 그리움을 말하자
곤란하다는 전 아내에게 행운을 빌어주면서도
너무 행복하지는 말라는 솔직함에 덧붙이는
작은오빠 피에르의 한숨이 안타깝고
혼자 남게 되자 훌쩍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웃퍼요
큰오빠 브누아의 아기 시몬을 만나러 간 룰라가
아기를 안아보고 울컥하는 모습도 아프지만
복도에 주저앉아 울다가
길가에 앉아 먹는 티라미수가 뜬금없고
그렇게 맛없으면 억지로 먹지 말라며
지나가는 할머니의 한 말씀이 또 웃퍼요
그런 거죠 인생이 워낙 웃픈 것이죠
3남매가 부모님 묘지 앞에서 만나
서로의 아픔을 훌훌 털어놓으며
끌어안고 우는 모습까지도
셋이서 함께 우는 건 처음 본다며
이웃 묘지에서 툭 던지는
참견쟁이 할아버지의 감동 파괴 멘트
'잔소리쟁이 아내도 죽고 나니 그립다'
덕분에 피식 웃으며 보게 됩니다
구석구석 깨알 재미가 톡톡 터져요
터놓고 아픔을 말하지 않은 것을
서운하다고 투덜거리며
큰오빠 브누아가 말하죠
안경 전문가로서 조언하는데
눈이 나빠진 것을 인정해야
안경을 쓰는 법이라는군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실직을 숨기던
까칠한 작은오빠 피에르가
두부로 친환경 집을 짓겠다는 동료에게
웃으며 사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열여섯 살에 심장 수술을 하고 난 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며
웃고 산다고 하는 우문현답에도
고개 끄덕이지 않을 수 없어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저마다 간직한 깊고 묵직한 슬픔들을
잔잔한 웃음과 소소한 기쁨으로 견뎌내는
삶의 모습들이 안쓰럽고 기특합니다
조그만 숲도 서로 다른 나무들이
어울려 이루어지듯이
가족도 같은 듯 다른 마음들이
한데 모여 부대끼며 이루어지는 거죠
숲이 있는 곳에 쉼터가 있고
가족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으니
티격태격 다투고 지지고 볶다가도
뭉치면 힘이 나는 존재가 가족입니다
있어서 번거롭고 묵직하다가도
있으니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은
때로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힘든 만큼 정겹고 따뜻한 존재인 거죠
어쨌거나 해피 엔딩이라 좋은 영화
'라 파미에' 덕분에 따뜻하게 웃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