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95 로맨스의 정석

영화 '러브 어페어'

by eunring

워렌 비티의 노련미와

아네트 베닝의 우아미에

노배우 캐서린 헵번의 원숙미까지

배우들의 과하지 않은 연기와

엔니오 모리꼬네의 로맨틱한 음악으로

감성 로맨스의 정석을 보여주는

영화 '러브 어페어'는

은퇴한 풋볼 스타 마이크 갬브릴의

결혼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바람둥이 마이크(워렌 비티)와

린의 결혼 소식으로 매스컴이 들썩이는데

시드니행 비행기에서 만난

테리(아네트 베닝) 매력에

마이크는 그만 빠져들고 말아요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은

그렇게 어쩌다 우연히 시작됩니다

엔진 고장으로 섬에 비상 착륙한 비행기 덕분에

타히티로 가는 여객선을 함께 타게 되고

전화는 없고 전보만 되는 여객선에서

두 사람은 가까워질 수밖에 없죠


당신을 보는 게 좋다는 마이크의 말이

짧고 단순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마음을 사로잡아요


테리가 뭐하냐고 묻자 당신을 보고 있다며

까다로우니 바람은 안 피울 거라는 말을 건네죠

까다롭다는 건 신중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이자

아무리 까다로운 여자도 예외는 있다는 테리도

이미 마음이 흔들린 거죠


피아노도 가르치고 작곡과 노래도 한다는

테리에게 일어서 보라며 손 내미는

마이크손을 잡고 일어나며

훌륭한 선수는 생각을 안 한다고

테리는 말합니다

함께 춤추는 갑판에서

두 사람을 축복하듯 빗방울이 후드득~


어쩌나요 두 사람에게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약혼자가 있는데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으면서도

그림 같은 섬의 하얀 집에 들러요


마이크의 숙모 지니(캐서린 햅번)는

커다란 백조 화병에 꽃을 꽂으며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것을 원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테리에게 건넵니다

마이크는 자기가 백조인 줄 모르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살고 있다고 덧붙이죠


남편이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기혼 상태라는 지니는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도

마이크와 테리의 마음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87세의 캐서린 햅번이 특별 출연해

지니를 연기하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캐서린 햅번이

파킨슨병을 앓기 시작했다는데

주변에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섬세한 연기를 했다니 대배우답습니다

캐서린 햅번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테리의 허밍으로 흐르는

'Piano Solo'는 감성적이고 감미로워요


짧은 사흘의 사랑 후

서로 마음이 확실해지면

석 달 후 5월 8일 5시 2분에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만나자고

나오지 않더라도 이유를 묻지 않기로

불확실한 약속을 하는 순간

비행기는 착륙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두 사람은

각자 약혼자들의 마중을 받으며

일단 헤어집니다


석 달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안정된 현실을 버리고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지만 사랑의 길은 꽃길이 아니죠

마이크는 부유함 대신 검소함을 배우고

테리 역시 사랑의 설렘으로 애틋하지만

그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지만

마음 졸이게 되는 건

영화가 주는 감성 때문이고

저무는 봄날의 고단함 탓이라고

슬며시 발뺌을 해 봅니다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 곁에는

이미 헤어진 연인들이 있지만

우연히 다시 만나더라도

이유를 묻지 않기로 했으니

그렇게 스치고 지나갑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화번호부에서 테리의 번호를 찾았다며

마이크가 찾아와서는

그날 안 갔다고 거짓말을 하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사과하러 왔다는 마이크의 거짓말에

자정까지 기다렸다는 거짓말로 답하는

테리에게 마이크가 물어요

심한 폭우 속에서 기다렸냐고~

그날 밤늦게까지 기다리던 마이크를

위로하듯 폭우가 쏟아졌거든요


다시 만나더라도

이유를 묻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더 이상 질문하지 말자고 하다가

이렇게 먼길을 왔는데 이유를 물을 수 없냐고

행복하냐고 서로에게 묻기도 하다가

지니가 테리에게 남긴 선물을 건넵니다


지니 숙모의 스카프를 전하고

작별의 악수를 나누며

마이크가 그림 이야기를 덧붙이죠

스카프를 걸친 그림을 그려 호텔에 맡겼더니

레스토랑에 걸어놓는다고 했는데

어떤 여성이 그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냥 주라고 했다고 말끝을 흐리다가

마이크가 갑자기 그림 찾기 시작하죠


줄곧 소파에 기대앉은 테리의 모습과

다른 방에 걸려 있는 마이크의 그림으로

마이크는 그간의 사정을 이해합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라는 테리에게

우리 두 사람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했다면

왜 하필 그게 당신이었냐는 마이크의 말에

눈물 그렁한 테리의 대답이 뭉클합니다


'하필 그때 내가 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죠

바로 거기 당신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눈물 맺힌 그녀의 모습이 먹먹한데

마이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까지도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기적까지 바라지 않아요

당신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나도 걸을 수 있어요'


창밖에 축복처럼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눈송이와

엔니꼬 모리꼬네의 감미로운 음악을 안고

떠오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띄워지는 The End


그러나 그들의 감성 로맨스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마이크가 그려나가는 그림 속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웃으며 걸어 나오는

테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영화의 소감도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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