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11 저녁의 조화
드뷔시 '보들레르의 다섯 개의 시'
비가 오는 날
빗소리가 듣고 싶을 때는
우산을 펼쳐 들고나가 걷기도 하지만
집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싶을 때는
TV 음소거 후 고요함과 적막함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자막을 봅니다
빗물처럼 스치듯 흐르는 자막을 보다가
'바이올린은 비탄의 가슴처럼 떨고 있고'에
눈길이 머물러 제목을 보니
드뷔시의 '보들레르의 다섯 개의 시'입니다
드뷔시와 보들레르의 만남이
고즈넉하게 아름답습니다
'발코니' '저녁의 조화' '분수' '묵상'
'연인들의 죽음' 다섯 곡 중에서
두 번째 곡 '저녁의 조화'의
바이올린은 비탄의 가슴처럼 떨고 있다는
시구가 꽃향기처럼 마음에 꽂히는
비 오는 저녁입니다
비 내리는 봄날 저녁과
바이올린의 만남도
멜랑꼴리합니다
여러 음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며
부드럽게 노래하는 바이올린은
악기의 여왕이라 불린답니다
'악기 제조의 위대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악기래요
작은 몸집이지만 풍부한 표현과
다양한 음색이 가능한 매력쟁이랍니다
악기의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를 닮는다고 해요
바이올린 연주자에게서는
화려함과 당당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답니다
'마침내 꽃들이
저마다의 줄기 위에서 하늘거리며
향로처럼 향기를 뿜어내는 시간이 되었네
소리와 향기는 저녁 공기를 맴돌아
우울한 왈츠와 나른한 현기증이여
꽃마다 향로처럼 저마다의 향기를 내뽐낼 때
바이올린은 비탄의 가슴처럼 떨고 있고
우울한 왈츠와 나른한 현기증이여
하늘은 광대한 제단처럼 슬프고 아름답다'
보들레르의 시 '저녁의 조화'와
촉촉이 젖은 봄날의 이 저녁도
슬프고 아름답게 어울립니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빗줄기도 잦아든 듯
음소거 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