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39 흐름을 거스르는 조각배처럼
영화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를 위대한 개츠비답게 하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순수한 매력으로 시작하여
'우리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거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조각배처럼'이라는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의 엔딩 멘트로
씁쓸함과 허무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
학생 시절 피츠제럴드의 원작 소설로 읽었으나
개츠비의 순수하고도 바보 같은 사랑과
데이지의 이기적인 사랑
화려함 끝에 오는 허무함과
돈과 명예의 낭떠러지 끝 환멸 정도의
씁쓸하고 어설픈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원작 소설과 상관없이
영화 속 관찰자이며 화자인
닉의 눈길을 따라가며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개츠비에게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는
닉의 마음이 되어 봅니다
먼 친척 데이지의 집 근처로 이사하는 닉의
바로 이웃집에는 제이 개츠비가 살고 있어요
개츠비는 옛 연인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
그녀의 집이 마주 보이는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벌이며 살고 있죠
개츠비의 집 맞은편에는 데이지가 살고
저녁이면 초록 불빛이 보여요
그쪽 부두의 끝에서는 언제나
밤새도록 초록색 불빛이 빛나고 있죠
데이지는 개츠비의 꽃이 되었으나
자신의 인생은 계속 올라가야 한다고
개츠비는 말해요
'내 삶은 저 별빛처럼 되어야 해
끝없이 올라가야 하지'
그의 모든 것은 데이지를 위한 거였죠
저택도 화려한 파티도 비싼 옷과 돈과 명예도
과거를 되돌리고 데이지를 되찾기 위해서
필요한 기다림의 계단이었던 거죠
그러나 데이지는 개츠비의 마음과 달라요
'내 딸은 예쁜 바보로 자랐으면 좋겠어
그 편이 세상을 살아가기 더 편하니까'
여전히 한결같이 끝까지 이기적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그녀의 목소리에는 돈이 들어 있다'라는
개츠비의 말이 문득 떠올라요
닉이 개츠비를 위해 데이지를 초대하던 날
비가 오는데 하얀 양복을 입은 개츠비는
설렘과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사춘기 소년처럼 서성입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거실 한가득 온갖 꽃들로 아름답고
마카롱까지도 보석인 듯 눈부신데
안절부절 개츠비의 표정이
첫사랑 소년처럼 발그레해요
4시가 되자 데이지가 옵니다
온실을 통째로 옮겨왔냐고
꽃보다 화사하게 웃는 데이지와
비를 쫄딱 맞고 서 있다가 들어오는 개츠비는
5년 만의 만남을 눈빛 인사로 대신합니다
개츠비의 눈빛과 데이지의 그렁한 눈 속에
지난 5년의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죠
개츠비의 저택에 초대받은 데이지가
드레스룸에서 개츠비가 던지는
화려한 셔츠에 파묻히듯 주저앉으며
느닷없이 슬프다고 말해요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들을 본 적이 없다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죠
화려하고 소중한 건 너무 빨리 사라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하필이면 닉의 생일날
개츠비와 데이지 닉과 톰과 조단
모두가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데이지의 남편 톰은 개츠비의 정체를 폭로하고
개츠비와 데이지가 함께 탄 노란 차에
톰의 내연녀 머틀이 달려들어 죽어요
운전은 데이지가 한 것인데
끝까지 데이지를 지키려던 개츠비는
오지 않을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리다가
머틀의 남편 윌슨의 총에 맞아
그가 오르고자 했던 하늘의 별이 되고 말죠
모든 게 개츠비의 탓으로 돌려지고
톰과 데이지는 돈과 이기심 뒤로 숨어버립니다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 모두에게 외면당한
개츠비의 죽음 곁에는 닉뿐입니다
닉은 개츠비의 친구였거든요
데이지를 만나게 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뭔가 해주고 싶다는 개츠비에게
그냥 부탁이니 친구로서 해준 거라고 했었죠
'대가를 바라고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니야
난 단지 친구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
사람들은 개츠비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알아보려 애썼지만
그는 부패할 수 없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그처럼 희망찬 사람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닉의 회상이 씁쓸합니다
그들은 다 썩었다고
그들 모두를 다 합친 것보다도 낫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는
닉의 독백마저도 한없이 공허할 뿐
마지막 장면에서
닉은 '개츠비'라는 제목 앞에
'The Great'를 덧붙여요
자신의 회상을 마무리하는 글에
'위대한 개츠비'라고 건네는
닉의 마지막 인사는
개츠비에게 보내는 응원이고 격려인 것이죠
꿈과 사랑과 희망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희망을 잃지 않는 힘이 있는 개츠비를
위대한 개츠비라고 회상하는
닉의 마음에 공감합니다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내가 잠시나마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것은
개츠비를 희생물로 이용한 것들
개츠비의 꿈이 지나간 자리에 떠도는
더러운 먼지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닉은
다시 자신의 꿈을 찾았을까요?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조각배처럼
인간의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에 대한
순수하고 아름다운 흥미를 다시 찾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