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62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고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

by eunring

구약성서에 나오는 삼손의 이야기를

프랑스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로 만들었어요


태어나면서 이미 신의 선택을 받은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블레셋 여인 데릴라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소명 대신 데릴라를 향한 사랑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듭니다


데릴라의 유혹에 넘어간 삼손이

하느님을 배신하더라도

데릴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자

데릴라가 부르는 매혹적인 아리아가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랍니다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데릴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의 힘이 태어나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카락에서 나온다는 비밀을 알려주고

잠이 든 사이에 머리를 깎이는 삼손은

힘을 잃고 눈까지 멀게 되어

블레셋 인들에게 잡혀

십 년 동안 방아를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죠


블레셋 제사장이 조롱하듯

너의 신이 너의 눈을 다시 뜨게 하면

그 신을 믿겠다고 빈정거리자

블레셋 인의 축제에 끌려 나온 삼손은

신전의 기둥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한 번만 더 힘을 달라는 간절함으로

예전의 힘을 되찾은 삼손은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블레셋 인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장엄한 결말인데요


삼손이 아닌 그 누구라도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유명한 메조소프라노 아리아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고'는

삼손이 건네는 사랑의 맹세에 대한

데릴라의 화답으로 애틋하고 우아합니다


'그대의 목소리에 내 마음이 열리네

동트는 새벽의 입맞춤에 꽃이 피어나듯이

오 내 사랑 내 눈물을 닦아주는

그대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려요

말해주세요 데릴라에게 돌아온다고

다시 말해주세요

달콤하게 속삭이던 그 맹세를

다시없을 그날의 맹세를'


제2막에서 데릴라를 찾아온 삼손에게

데릴라는 사랑을 속삭이며 유혹하고

아리아의 끝부분에 삼손의 고백

'데릴라 데릴라 쥬뗌므'로 이어져

아름다운 사랑의 이중창이 됩니다


삼손은 데릴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의 힘의 원천이 긴 머리라는

일급비밀까지 덥석 알려주게 되죠

데릴라는 잠이 든 삼손의 긴 머리를 자르고

삼손은 힘을 잃게 된답니다


생상스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삼손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거칠고 조급한

안하무인 삼손의 모습과 달리

사색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관객들의 공감을 얻게 되죠


대본가 르메르가 대본을 쓸 때

철학자 볼테르의 희곡에 그려진

섬세하고 신중하며 고뇌하는 민족 지도자

삼손의 모습을 바탕으로 했답니다

연극이나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사랑의 유혹까지도 가슴을 저미는 듯한

마리아 칼라스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고'를 듣다 보면

삼손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요

'데릴라 데릴라 쥬뗌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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