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89 핑크빛 마카롱 인생은 없다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를 봅니다
영화라기보다는 그림이고 화보 같아요
프랑스혁명의 진지한 역사와 상관없이
천진난만한 철부지 소녀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갇힌 채 여인이 되어가는
마리 앙트아네트 개인의 삶을 그리고 있죠
빛깔 곱고 달콤한 마카롱 같은
화사한 장면 장면이 눈을 즐겁게 하지만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비극적 결말이
안쓰럽고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영화는 핑크빛 마카롱 빛깔이지만
인생은 마카롱처럼 달다구리가 아니니까요
자신에게 닥쳐올 비극이나
불운을 모르는 채로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재미나고 맛있고 달콤한 삶을 누리던
베르사유 궁전의 핑크 장미 한 송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하면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먼저 떠오릅니다
6살 개구쟁이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궁전에서 연주를 하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의자에서 굴러 넘어졌을 때
8살 마리 앙투아네트가 일으켜주자
꼬맹이 모차르트는 사랑스러운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해달라고 졸랐다는
귀염 뽀짝 일화가 있죠
물론 영화에는 나오지 않아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오스트리아 황제를 알현할 때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지
바로 이 방에서
자넨 어려서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요제프 2세 황제가 모차르트에게
추억을 되새기며 말하는 장면이 나오죠
또 생각나는 건 프랑스 디저트
무지개 빛깔 달콤한 마카롱입니다
영화의 파티 장면에 꽃처럼 쌓아놓은
마카롱이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알록달록
달다구리 마카롱을 좋아했다지만
비록 화사해 보이는 인생일지라도
무지갯빛 마카롱처럼 행복하지 않고
쓰디쓴 인생의 맛은
마카롱 맛과 전혀 다르니 안타까울 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 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막내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의 오스트리아 이름은 마리아 안토니아
쇤브룬 궁에서 귀염 받으며 살던
열네 살 철부지 소녀가
열다섯 살의 황태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적대국 프랑스 파리로 건너옵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오면서
마리아 안토니아의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바꾸고
그동안 가진 걸 모두 버리고
베르사유 궁전 왕실 예배당에서
호화로운 결혼식을 하고 황태자비가 됩니다
사냥과 자물쇠에 몰입하는 루이 16세 곁에서
외로움에 지쳐가는 베르사유의 그녀는
패션과 사교와 도박과 화려한 피티를 즐기며
알록달록 마카롱과 예쁜 신발을 좋아했다죠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죽자
어린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고
그녀는 왕비가 됩니다
푸프 스타일의 머리에 꽃 장식을 하고
온갖 구설수에 오른 그녀는
아이를 낳는 순간에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구경을 당하는 유리벽의 삶에 지치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달아나듯
아이들과 트리아농의 오두막집에서 지내며
루소의 책을 읽고 자연 속에서 보내기도 하죠
예술과 과학을 후원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해요
트리아농의 작은 극장에서 무대에 올라
직접 노래도 불렀다고 합니다
아이돌 기질이 있었던가 봐요
영화 속에 오페라 장면이 나오는데
가수가 그네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
'다프네는 아폴로의 구혼을 거절했네'는
프랑스 작곡가 장 필립 라모의
바로크 오페라 '플라테'
2막에 나오는 아리아랍니다
아리아가 끝나자 그녀 혼자
박수를 치는 장면이 생뚱맞아요
박수를 치지 않는 프랑스 전통과 상관없이
혼자 박수를 치는 당돌한 모습까지도
한없이 외로워 보입니다
프랑스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며
왕은 도망갈 수 없다는 루이 16세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왕의 곁이라며
주변 사람들을 궁정에서 떠나보내면서도
루이 16세 곁에 함께 하는 그녀는
문득 철든 모습입니다
베르사유 궁을 떠나며
이 길이 좋으냐는 루이 16세의 물음에
'나는 지금 작별 인사를 하고 있어요'
쓸쓸한 그녀의 대답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데요
다행입니다
그녀의 비참한 최후까지는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그녀가 말년에 보낸 편지의 구절에는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라고
쓰여 있다는군요
그녀가 좋아했던 길과 작별을 나누며
철부지 시절과도 작별을 나누었을
그녀의 쓸쓸한 눈빛이
안쓰럽고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