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88 사랑의 힘
영화 '콜드 마운틴'
세계의 명화이니
토요일 한밤중에 시작해서
어김없이 하루를 넘겨 일요일까지
눈을 뜨고 봐야 하는 극한 관람이지만
좋은 영화니까 기꺼이 감수합니다
전쟁영화는 좋아하지 않으나
순수한 사랑의 힘으로
전쟁을 이겨내는 로맨스 영화라서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콜드 마운틴'이라는 제목처럼 차갑고
뒷맛이 쓰라리게 아프지만
아픈 만큼 괜찮은 영화입니다
부상당한 채 누워서
인만(주드 로)이 말했었죠
콜드 마운틴이라는 이름을 되뇌다가
'어떻게 이름 하나가
실제가 아닌 이름 하나가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할까요?'
그에게 고향 콜드 마운틴은
사랑하는 아이다의 이름과 동격인 거죠
영화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콜드 마운틴이라는 제목 하나가
이토록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요?
보고 나면 마음이 시리고 아릿하지만
그래도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콜드 마운틴'
'나 돌아왔어요'
아이다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뾰족한 고드름 조각처럼 아픔으로 남아도
그래도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만큼
순수한 사랑과 열정이 처연하게 아름답습니다
순백의 눈 덮인
거칠고 비정한 산과도 같이
가슴 시린 영화의 분위기는
배우들의 숨 막히는 연기와 함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애잔한 인생과
가슴 먹먹한 결말까지 어우러져
진한 감동과 여운을 안깁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배경이죠
'그와의 대화를
글자 수로 세어봤는데 얼마 안 됐어요
그런데도 그가 몹시 그리워요'
아이다(니콜 키드먼)가
어색한 작별 키스로 배웅한
인만(주드 로)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인만도 마찬가지죠
'말이 오가야만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나요?
서로에 대한 느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리다면
그건 뭐라고 하는 거죠?'
한 여자에게 돌아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달아나
고향 콜드 마운틴으로 향하는 탈영병 인만은
먼길을 돌고 돌아 피폐해진 모습으로
마침내 그녀에게 돌아옵니다
목사님의 예쁜 딸 아이다에게 마음을 주고도
물 한 잔 마시고 묵묵히 밭을 갈아주는 인만과
수줍어 제대로 건네지 못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마차에서 오르간 연주로 대신하는 아이다
순수하고 수줍은 첫사랑의 풋내 나는 열정이
전쟁의 비정함을 덮고도 남을 만큼
절절하게 아름다워요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만난 적이 없다'는 아이다의 말에
인만은 아니라고 하죠
'우리는 수천 번 만났어요
그 순간은 마치 다이아몬드로 가득 찬
주머니 같았죠 현실이건 상상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는 바로
그의 목적지였으니까요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땅도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통해 배워갈 뿐'
시간이 흘러 전쟁이 남긴 상흔 속에서
루비(르네 젤위거)와 함께 농장을 일군
아이다의 독백이 먹먹합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과 핏빛 비극 속에서도
사랑의 위대한 힘은 꺾이지 않고
영화의 엔딩에서
아이다는 딸 그레이스 인만과 함께입니다
'저희가 누리는 모든 축복에 감사'하다고
기도하며 부활절을 맞이하는 그녀는
'이제는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날도 있다'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지만
그녀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서
여전히 인만의 모습을 보고 느낍니다
'당신이 남긴 가치 있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라며
천방지축 활달하고 생활력 강한
산골처녀 루비(르네 젤위거)에게 읽어주는
책의 내용이 아이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 같아요
'린튼을 향한 내 사랑은
숲 속의 무성한 나뭇잎과 같다
시간이 가면 변할 것이고
겨울은 모두를 바꿔놓을 것이다
히드클리프를 향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와 같다
내게 기쁨을 안겨주진 않아도
꼭 필요한 그는 항상 내 가슴에 있다'
그렇게 인만은
아이다의 가슴에서 함께 살아가겠죠
변하지 않는 단단한 바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먼길을 돌고 돌아
그녀를 향해 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 속에 그가 있고
들리는 모든 소리에 그의 숨결이 함께 하며
포근하고 듬직한 그녀의 산이 되어
그녀와 딸 그레이스를 지켜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