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197 살구와 탱자

신맛과 쓴맛 사이에서

by eunring

산 아래 친구가

요즘 살구가 맛있다며 먹어보랍니다

친구가 사는 동네 산아래 길가에

큰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주황빛으로 익은 살구가 떨어져 뒹굴더라고

그래서 마트에 나온 살구 한 봉지 사다가

하루 한 개씩 먹는다며

초여름 잠깐 나오는 과일이니

나에게도 먹어보랍니다


살구나무를 본 기억이 없어서

친구의 살구 이야기에

살구나무 대신 가시가 뾰족한

탱자나무가 툭하니 떠오릅니다


어릴 적 기억 속 어디선가

가시 돋친 탱자나무 울타리에 열린

노란 탱자를 멋 모르고 한 입 깨물었다가

시큼하니 떫기만 한 쓴맛을 본 추억이 있거든요


샛노란 탱자는 쓰디쓴 맛이지만

탱자 향기는 유난히 상큼하고

탱자꽃은 하얗게 예쁘다고

친구가 덧붙입니다

과수원 탱자나무 울타리에 핀

새하얀 탱자꽃이 예뻐서 차를 멈추고

한참 바라본 기억이 있다는군요


탱자의 떫고도 쓴맛도 알고

살구의 새콤한 단맛도 알지만

탱자꽃과 살구꽃은 본 적이 없어

잠시 상상 속 꽃 나들이를 해 봅니다


매화가 질 무렵 피었다가

벚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살구꽃은

시와 노래 속에서도 많이 피어나는

연분홍 꽃이랍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순이~

아가씨의 수줍음이라는 꽃말을 가진

살구꽃은 봄날의 꽃대궐을 장식하는

분홍 아가씨 꽃인 거죠


새하얀 탱자꽃의 꽃말은

추억이랍니다

친구와 탱자탱자

깨톡 문자로 추억을 나누기에

안성맞춤 꽃말이라 피식 웃음이 납니다


쥐뿔도 모르면서

탱자탱자 한다는 말도 있어요

잘 모르면서 아는 척 잘난 척한다는 건데

'탱자탱자'는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죠


노란 빛깔이 곱고 향이 제아무리 좋아도

먹을 수 없는 열매라 그런가 봐요

과실나무 열매들이 저마다 바쁜

결실의 계절에도 탱자탱자 매달린

바람에 살랑살랑 느긋하고 한가로운 모습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도 있답니다

남쪽에서 자라는 귤나무를 회수 건너

북쪽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나무가 된다는

중국 속담이래요

나무가 그렇듯 사람이나 문화도

환경에 적응하며 달라진다는 얘기죠


어쨌거나 살구의 계절이라니

동네 마트에 살구 사러 나선 길

산수국을 만나 눈인사 먼저 나눕니다

마트에 살구가 없더라도

오가는 길에 산수국을 만났으니

그것으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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